7년전 '핸드볼 성폭력' 고발한 교수 "괴물 낳는 시스템에 메스댈때"

7년전 '핸드볼 성폭력' 고발한 교수 "괴물 낳는 시스템에 메스댈때"

이해진 기자, 권용일 기자
2019.01.28 04:00

[인터뷰]스포츠심리 전문가 정용철 서강대 교수…"꽃뱀 프레임에 피해자 고통, 가해자는 당당"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사진=뉴스1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사진=뉴스1

"(코치가)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검사하겠다며… (중략) 다친 부위를 봐야겠다며 들춰보고, 더듬었어요"

2012년 발표된 논문 '한국에서 핸드볼 선수로 살아가기'의 한 대목이다.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와 핸드볼 선수 출신 제자가 은퇴한 여자 핸드볼 선수 4명을 심층 면담해 저술했다. 논문이라기보단 체육계에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탄원서였지만 반향은 크지 않았다. 그리고 7년 뒤 심석희 선수의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가 나왔다.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 교수는 "부채의식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과거 체육계 성폭력 실태를 조사했다면, 그 때 발본색원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있다"고 말했다. 자책을 딛고 다시 싸움을 시작할 때라는 게 정 교수의 생각이다.

스포츠심리학 전문가로 오랫동안 선수·지도자를 만난 정 교수는 가해자에게 유리한 각도로 기울어진 운동장인 체육계를 목격했다.

정 교수는 "평창올림픽 준비 기간에 한 선수가 감독한테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당했다고 상담해왔다"며 "그 선수는 분명한 성추행이었지만 올림픽이 코 앞인 만큼 잃을 게 많다는 생각에 사건을 덮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가해자가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정 교수는 "충격적인 것은 가해자들은 공통되게 피해자에게 '꽃뱀 프레임'을 씌운다"고 말했다. 그는 "스키종목 한 간판 선수도 동료 여선수를 폭행하고 성추행해 영구 제명되자 대한체육회에 피해 선수가 평소 자기를 좋아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고 했다.

정 교수는 몇몇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낳은 시스템에 칼을 대야 한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조재범씨도 심석희 선수 폭행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나자 지인에게 (걸려서) 억울해 했다고 한다"며 "조씨의 인식은 체육계에 폭력이 얼마나 만연한지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현 체육계는 성폭력을 향해 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 진단한다. 정 교수는 "누구나 하고, 해도 아무도 안 혼내는데 오히려 그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서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조재범씨에게 면죄부를 줘선 안되지만 그 1명만 괴물로 몰아가기 보다는 그 괴물을 만든 구조를 깨야한다"고 강조했다.

체육계에 과감한 외과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게 정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엘리트체육 시스템 해체부터 대한체육회의 발전적인 해체까지 고려할 때"라고 힘줬다.

정 교수는 "예산도 국가가 빙상연맹에 직접 내려주는 식으로 전환해 대한체육회의 예산권을 없애야 한다"며 "체육특기자전형에 집중하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 등 요즘 정 교수를 찾는 부처도 많아졌다. 이런저런 체육계 성폭력 대책 회의에 자문 중이다. 정 교수는 "여러 부처가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정작 전체를 추진력 있게 이끌어갈 '컨트롤 타워'가 안보이는 게 아쉽다"고 꼬집었다.

정교수는 "체육계는 쇄신하고 정부 부처는 하나된 노력을 해야 한다"며 "이번에 제대로 도려내지 않으면 어린 선수들이 성폭력을 향해 문이 활짝 열려 있는 트레이닝 룸으로 들어가는 악몽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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