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무총리실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형정원)이 낸 연구 보고서에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검경 수사권조정을 비판하는 내용의 논문이 실려 관심을 끌고 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정원은 지난 20일 발간한 형사정책연구 2020년 제121호에 '검·수사권조정에 대한 비판적 분석:2020.2.4.자 개정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의 내용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었다.
논문의 저자인 박찬걸 대구가톨릭대 사회과학대학 경찰행정학과 부교수는 개정법에서 제시된 검경 수사권조정 내용은 형사절차가 기존의 경우와 비교해 훨씬 복잡하게 변경돼 국민 입장에서 볼 때 불편함이 초래될 것이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또 수사권조정으로 사법경찰의 수사에 대한 통제수단이 약화돼 비대해진 권한을 적절하게 견제할 수 있는 장치의 마련도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수사권조정 개정안에 따라 송치 전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원칙적으로 폐지된다면, 사법경찰관에 대한 법적 통제는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정안에는 사법경찰관에 대한 통제로 영장청구시 검사의 보완수사요구가 있는 때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이를 이행하도록 돼 있는데 정당한 이유를 판단하는 기준이 불확실해 검경간 갈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서 "경찰이 검사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보완수사를 강제하게 하거나 검사에게 사건을 송치하게 하는 등 강제절차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교수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 보완수사 요구를 따르지 않는다면 직무배제 또는 징계를 요구할 수 있지만 실제로 정당한 이유가 없어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따르지 않는 경우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만약 경찰이 검사의 통제대로 보완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게 되면 검사가 수사과정에서 수사지휘를 포기하게 되고 피조사자는 추후 검찰에 가서 다시 조사를 받게 되는 이중수사가 이뤄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박 교수는 "경찰이 정당한 이유없이 보완수사 요구를 거부해 검사가 직무배제나 징계를 요구해도 얼마나 실효적인 제재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징계요구권이 아니라 징계소추권을 인정하는 것이 보다 실효적인 제재방안이라고 판단된다"고 제안했다.
이같은 지적에 일선의 한 경찰관은 "검사로부터 보완수사 요구를 받거나 징계청구를 받으면 인사에 큰 지장을 받을 수 있어 실무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과거면 모르겠는데 지금처럼 언론 등 시민사회의 감시가 엄중한 시기에 정당한 이유가 없는데도 보완수사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징계보다 더 무거운 처분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개정안에 따라 수사와 기소의 엄격한 분리를 통해 수사의 영역에 있어 검사를 절대적으로 배제하는 방안은 타당하지 않다"면서 "경찰의 부적절한 수사활동에 대해 검찰의 시의적절한 개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수사의 효율성이 저하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민 인권이 침해될 가능성도 농후하기 떄문"이라고 했다.
독자들의 PICK!
그러면서 기소유예 처분을 예로 들었다. 기소유예란 죄가 인정되지만 기소를 미룬다는 처분인데 이 경우 송치사건인지 불송치사건인지 애매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개정안에는 경찰이 검사의 기소유예처분에 상응하는 불송치처분을 할 수 있다면 피의자가 무혐의를 주장하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규정이 없어 이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박 교수는 피해자 없는 범죄에 대한 불송치처분의 견제장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하면서 "도박, 성매매, 마약, 뇌물 등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는 범죄의 경우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아도 이의를 제기할 피해자가 없어 사건이 그대로 묻힐 수 있다"면서 "보완수사 요구에 대한 통제수단을 더욱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 경찰 간부는 "이의신청 제도를 세부적으로 조정해 국민의 인권이 침해되는 부분이 없도록 노력 중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경찰에게 1차적 수사권을 주는 것은 검사의 확증편향을 막아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그 기본적인 취지를 지키면서 그 과정에서 범죄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제도 보완은 필요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
박 교수는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 축소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 설정기준이 매우 모호하다"면서 "이는 검사의 직접수사 범위를 축소해야 한다는 수사권조정의 당위적인 명제 아래 어떻게든 그 범위는 축소해야 하겠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수사에 있어 직접수사를 배제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고육지책으로 제시된 일종의 타협책이라 판단된다"며 비판했다.
또 박 교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로 검찰의 직접수사 범죄가 재설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수처 설치로 검찰에 대한 통제가 더욱 강화되는 상황에서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로 인정되고 있는 부패범죄, 경제범죄, 공직자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범죄 등은 오히려 정치적으로 민감할 여지가 많다"면서 "공수처의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분야에 대한 검찰의 직접수사는 축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과 관련해 현재 검찰과 경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주도하는 검경 수사권조정 후속회의에서 실무자급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직접수사 범위를 조정해 나가는 중이다.
논문 말미에 박 교수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경 수사권조정은 결코 국민여론이나 국민감정으로 밀어붙여서는 안된다"면서 "지금까지 유지해 온 국가 형사사법시스템을 완전히 변경하는 작업은 합리적인 이성을 기초로 한 전문가의 엄격한 진단 아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법경찰관에 대한 검사의 사법통제는 보다 철저하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이번 개정법은 또다른 개정의 대상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논문을 본 형정원의 한 연구원은 "형정원에 투고되는 논문은 1차적으로 외부 심사를 받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형정원이 개입할 수는 없다"면서 "외부 심사에서 게제가 결정되면 되돌릴 수 없다"고 논문 게제 경위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논문 내용은 형사법학자라면 누구나 그렇게 동의할만한 내용"이라면서 "형정원이 그동안 수사권조정에 대해 드러내놓고 반대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논문이 투고돼 어쩔 수 없이 게제된 꼴"이라면서 "논문 게제가 결정된 이후 스크린을 통해 알고 당황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같은 논문에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 관계자는 "수사권조정 법안은 해당 논문이 밝히고 있는 것처럼 검경으로 하여금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한다"면서 "검사의 수사지휘를 폐지하는 대신 경찰 수사를 통제할 수 있는 검사의 권한과 국민의 권익구제절차를 새롭게 규정해 단계별로 촘촘한 통제장치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하위법령 제정이 진행 중인만큼 학계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장차 수사실무에서도 국민과 가장 먼저 만나는 형사사법기관으로서 공정하고 중립적인 수사시스템을 갖춰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