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천억원대 체납 관련 소송 중인 '선박왕' 권혁 시도그룹 회장이 법무부를 상대로 "출국금지 기간 연장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법원은 권 회장이 해외에 도피하거나 재산을 은닉할 우려가 충분하다고 봤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박양준)는 지난 20일 권 회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출국금지기간 연장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무부는 2011년 6월 국세청장 등 요청에 따라 권 회장에 대해 출국금지처분을 내린 뒤 기간을 계속 연장해왔다. 권 회장이 국세 체납을 회피하고 재산을 해외에 은닉할 목적으로 출국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권 회장 측은 "해외에 재산이 전혀 없으며 재산을 은닉하거나 해외에 도피시킨 정황도 전혀 없다"며 출국금지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법무부가 해외 도피 및 재산은닉 가능성에 대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는 주장이다.
권 회장 측은 재판에서 10년이라는 장기간의 출국금지로 해운회사가 경영부실에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권 회장 측은 "해외에서 운영하던 해운회사 자산은 채무 증가로 모두 채권자에 의해 처분됐거나 손실이 더욱 커져 법인의 자산가치가 거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며 "이미 상당량의 선박을 처분하는 등 막대한 손해를 입은 상태"라 호소했다.
법원은 법무부의 출국금지조치가 정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권 회장은 국내 뿐만 아니라 일본, 홍콩, 케이만군도 등 해외에 다수의 법인과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편법을 통해 실질적으로 이를 운영하는 방법으로 취득한 수익과 축적한 자산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세나 지방세 체납세액의 상당액을 납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임에도 정당한 사유없이 장기간 이를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해외 도피나 재산 은닉 가능성에 대해서도 충분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권 회장의 가족들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고 그가 설립한 다수의 해외법인도 있다"며 "권 회장이 해외로 출국하여 손쉽게 외국의 생활기반을 마련할 수 있어 체납을 회피하고 외국에서 여생을 보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에 존재하는 가족 명의의 부동산이나 관계 회사 명의의 부동산이 실질적으로 권 회장의 차명재산이라고 볼 개연성이 상당하다"며 "이를 매각해 해외로 빼돌릴 경우엔 이에 대한 강제집행이 곤란해지는 상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원고는 국내나 해외에 있는 실질적인 자기 소유의 재산을 은닉하여 과세관청의 강제집행을 회피하거나 회피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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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의 손실에 관해서는 "출국금지 처분으로 권 회장이 사업 경영에 있어 어려움을 겪게되는 불이익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권 회장의 불이익의 정도가 이 사건 처분을 통하여 체납자의 재산 해외도피를 막아 국가의 조세징수권을 확보하려는 공익에 비하여 지나치게 커서 현저히 균형을 잃은 위법이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했다.
권 회장은 2012년 세무당국이 부과한 소득세 3051억여원에 대해 부과 처분을 취소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심에 대한 재상고심이 진행 중이라, 추징금액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1990년 선박업체 시도물산을 설립한 권 회장은 일본과 홍콩 등지에서 선박 사업을 확장에 성공해 250척의 선단을 보유하면서 '선박왕'으로 불려왔다.
권 회장은 2016년 국내에 근거지를 두면서 조세회피처에 거주하는 것처럼 위장해 종합소득세·법인세를 내지 않은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은 바 있다. 2200여억원 납부를 회피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대법원은 이 가운데 2억여원을 유죄로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