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지난해 정말 너무 힘들었다… 선처해달라"
23일 오전 11시쯤 서울동부지법 형사6단독 손정연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재판에 출석한 A씨(47)는 최후진술에서 눈물을 보였다. A씨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자신을 '평범한 가정주부'라 지칭한 A씨 측은, 그러면서도 박 전 시장의 성범죄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이 징역 1년을 구형하자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A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회원 1390명 이상의 네이버 밴드와 블로그 메인 화면에 '기획미투 여비서를 고발합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피해자의 실명과 직장명을 공개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23일 서울동부지법 형사6단독 손정연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재판에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비밀준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초범이고 범행을 자백하고 있으나 전달 가능성이 큰 매체를 통해 실명을 직접 게시했고, 사이트에서 A씨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피해자의 실명이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는 개명까지 했다"며 "피고인이 인적사항을 공개한 목적은 피해자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성폭력 피해자의 사생활은 보호돼야 하는데 가해자가 영향력이 상당한 사람이라 고통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몰랐다는 취지로 부인했고 법정에서도 피해자가 아니라는 취지로 부인해 재범 위험성이 있다"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대해 엄벌로 다스릴 필요성이 있다"면서 징역 1년을 구형했다.
A씨를 대리하는 정철승 변호사는 "피고인은 15년 정도 전업주부 생활을 하고 2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며 "의도하지 않았지만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성범죄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정 변호사는 "피고인은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여러 일을 겪고 급성 우울증과 비슷한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서 웹검색을 통해 피해자의 이름을 알게 됐다. 피해자의 이름은 간단한 웹검색으로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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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피고인의 행위는 성폭력 피해자를 협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었다"며 "피해자 변호인은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박원순 시장이 성추행을 저질렀다고 발표해왔는데 이는 중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측이 주장하는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혐의 등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 사건은 하나하나 따지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해결됐을 사항으로 안타까운 사정이 있다"고 했다. 또 "어떻게 됐든 피고인은 대단히 깊이 뉘우치고 있으니 선처해달라"고 덧붙였다.
A씨는 최후진술에서 "만약 잘못된 일이란 걸 알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제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지난해 정말 너무 힘들었다.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 선처해달라"고 호소하며 눈물을 보였다.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는 "변론 내용을 보면 피고인은 사건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의 행위로 피해자는 지금도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지우는 일을 하며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며 실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변호사는 "피고인은 피해자의 실명을 웹검색을 통해 알게 됐다고 하는데 이는 거짓말"이라며 "피고인은 실명뿐만 아니라 어디에도 알려져 있지 않았던 소속과 근무처를 그대로 명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는 자신이 30년 이상 사용했던 삶의 표식인 이름을 바꿔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며 "피해자가 수사단계 초기부터 가명을 사용했던 건 공무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미래 상황, 사실상의 낙인을 피하고 일상의 안전을 보장받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실명 공개라는 범죄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준엄한 판결을 통해 보여달라"며 "그렇지 않다면 수많은 위력 성폭력의 피해자들에게 피해를 당해도 목소리를 내면 만신창이가 된다는 무서운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는 대리인을 통해 재판부에게 "저는 법을 믿고 조사를 받았다"며 "그런 법을 무시하고 제 삶을 망가뜨린 행위에 대해 엄벌해주시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또 "평범한 일상에서 제 이름을 쓰는 것도 불가능하게 됐다. 피고인에게 가장 엄한 처벌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