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후', '폭망', '퇴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일대에 걸린 정당 현수막들에 적힌 단어들이다. 7개의 정당 현수막들이 신호등과 전신주 사이마다 걸렸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은 방향에 상관없이 현수막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신호를 기다리던 한 시민은 현수막을 가리키며 얼굴을 찌푸렸다.
거리를 지나던 30대 하광욱씨는 "공격적인 내용이 많아 보기 안 좋다"며 "동네에서도 저런 현수막들을 자주 본다.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매장에서 일하는 김대성씨(22)도 "역 앞에 현수막이 너무 많아 주변 미관을 해친다"며 "어린아이들도 다니는데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다"고 했다.
도심 곳곳에 혐오성 정당 현수막이 난립하며 시민 불편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의 규제 권한 강화를 위해 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한다.
2022년 옥외광고물법 개정에 따라 정당 현수막은 일반 현수막과 달리 지자체 신고·허가 없이도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정당에서 혐오 표현이 담긴 현수막을 게시할 때도 구청에선 어떤 신고도 받지 못한다. 서울시내 한 구청 관계자 A씨는 "어디에 어떤 정당 현수막이 설치됐는지 전혀 통보받지 못한다"며 "직접 단속을 돌며 파악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신고 의무가 없으니 철거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구청 관계자 B씨는 "정당 현수막 게시 기간은 15일로 정해져있다"면서 "이마저도 구청에서 직접 언제 걸렸는지 파악해서 기간을 계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철거 통보를 해도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구청이 직접 철거한다. B씨는 "용역 업체도 아닌데 사실상 업무 외 일을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이 문제로 지적되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정당 현수막을 옥외광고물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혐오·비방성 표현을 담은 현수막 게시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법 개정을 위해선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행정안전부도 지난달 18일 정당현수막 관리 강화를 위해 '옥외광고물법 금지광고물 적용 가이드라인'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법 개정에 앞서 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기준을 만든 것이다. 지자체에서 △범죄행위 △미풍양속 등 금지광고물 여부를 판단해 강제 처분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현장에선 가이드라인 준수에 한계가 따른다는 반응이다. 정당 현수막은 신고 의무가 없어 구청이 설치 현황을 파악하는 것부터 어렵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PICK!
전문가들은 현수막 설치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수막들에 표현의 자유라고 보기엔 도를 넘은 내용이 많아 조치가 필요하다"며 "대학에서도 현수막을 걸 때는 허가를 받는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당 현수막도 허가를 받고 설치하도록 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안부 가이드라인이 나왔지만 지자체 권한 관련 법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기 위해선 결국 입법 외에는 근본적 해결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