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는 '사업장' 기준은 사고가 발생한 공장 뿐만 아니라 본사와 지점 등 '경영상의 일체를 이루는 활동 단위'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공장이 50명 미만 규모라고 하더라도 본사와 다른 사업장을 합쳐서 기준이 넘어가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를 받는 플라스틱 제조업체 대표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3년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함께 기소된 법인의 상고도 기각해 법인에는 벌금 5억원이 확정됐다. 같은 혐의로 함께 기소됐던 공장장 B씨는 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 받은 후 상고를 포기해 이미 형이 확정됐다.
2022년 3월 충남 서천군의 제조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당시 20대 근로자 1명이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10여일 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검찰은 공장장 B씨가 적절한 안전 조치 없이 정해진 세척 방법과 절차를 무시한 채 인화성 물질인 에탄올로 전기차 히터 부품인 컨덕터를 세척한 후 밀폐된 항온항습기에 넣어 건조하도록 지시해 폭발로 근로자를 숨지게 한 과실이 있다고 보고 그를 기소했다.
대표 A씨는 경영책임자로서 사업장의 안전관리 체계를 갖추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받아 재판에 넘겨졌다. 회사 법인은 양벌규정으로 함께 재판을 받게 됐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과 함께 사회봉사 200시간 명령을 받았으나 2심에서 오히려 더 무거운 형을 받았다. 2심 재판부는 "이번 사고는 근본적으로 공장에 안전관리 시스템이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A씨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1월27일 시행됐다. 부칙으로 '상시 근로자 수 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는 경과 규정을 뒀다. 2024년 1월27일부터는 상시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도 법 적용 대상이 됐다.
A씨와 법인은 상고를 제기하며 자신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다퉜다. 사고가 발생한 공장은 50인 미만 규모였기에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게 A씨 등의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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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1·2심에서 다투지 않은 쟁점은 적법한 상고이유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한 '사업 또는 사업장'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대법원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사업 또는 사업장'이라 함은 원칙적으로 '경영상의 일체를 이루면서 유기적으로 운영되는 경제적, 사회적 활동 단위'를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사, 지점, 공장 등의 개별 조직이 장소적으로 분리돼 있더라도 그 인사 및 노무관리나 재무·회계 처리 등이 독립적으로 운영되지 않은 채 '활동단위'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면 개별 조직 중 한 곳에서 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활동단위'를 구성하는 조직들 전부의 상시 근로자 수를 모두 합산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기준으로 봤을 때 사고가 발생한 공장은 50인 미만이라 하더라도 유기적인 '활동단위'로서 본사와 다른 공장 등 회사 전체를 하나의 사업장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런 전제를 두고 2심 재판부 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