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8월 27일 '탈북 여간첩 1호' 원정화가 체포됐다.
대한민국 경찰청은 이날 "중국에서 보위부 공작원을 만나고 돌아온 원정화를 체포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원정화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2013년 만기 출소했다.
1974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난 그가 34년 후 어떻게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체포된 것일까.

원정화는 학창 시절 누구보다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1988년 고무산 여자고등중학교 4학년 때는 학업성적이 우수해 '이중 영예 붉은 기 휘장'을 받았고 15세 때 김일성 사회주의청년동맹에 발탁돼 공작원을 양성하는 학교인 '금성 정치 군사대학'에서 교육받았다.
1992년 머리 부상으로 소속된 특수부대에서 의병 전역했으며 6년 후인 1998년부터는 국가안전보위부에 포함돼 공작 활동을 시작했다. 원정화는 주로 중국 선양, 다롄 등지에서 탈북자들을 감시·색출하거나 납치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 체류 중인 한국인 사업가나 정보 관계자들에게 접근해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2001년 북한 당국으로부터 "한국에 들어가서 신분을 위장하고 본격적인 남한 내 정보 수집 및 탈북자 파악 임무를 수행하라"는 지령을 받고, 탈북자로 위장해 제3국을 거쳐 국내에 들어왔다.

원정화는 대한민국 입국 후 하나원(북한 이탈주민 정착 지원사무소) 교육을 거친 후 탈북자 신분을 완벽히 이용해 치밀한 간첩 활동을 벌였다.
2005년 9월부터 2007년 5월까지는 군부대를 돌아다니면서 안보 강연을 50여 차례나 했다가 북한의 주장을 선전한다는 이유로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국군 기무사(현 국군 방첩사령부) 소속 장교 황모 중위 등 군 관계자들에게 접근, 연인 관계를 맺거나 금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환심을 샀다. 이후 이들을 통해 군사 기밀, 군부대 위치, 군 장교 명단 등을 빼내어 북한에 보고했다.
또, 북한 보위부 지령에 따라 남한 내 탈북자 단체 관계자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인질 삼아 탈북자들을 회유하거나 북한으로 유인하려 시도하기도 했다. 북한으로부터 탈북자 출신 반북 운동가, 북한을 비판하는 인사들을 납치하거나 암살하라는 지령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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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화의 정체가 의심받기 시작한 것은 조선족 가사도우미를 폭행하면서다. 이때 보통의 여자들은 쓰지 않는 정권 지르기나, 발차기 등의 수단을 쓰면서 그를 향한 의구심이 증폭됐다. 2008년 7월 황모 대위(진급)가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를 이유로 국군기무사령부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됐다. 한 달여쯤 지나 원정화와 그의 계부가 구속됐다.
원정화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후 2013년 만기 출소했다. 황 중위는 대위 진급이 취소됐고 불명예 전역을 당했으며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다만 원정화가 직접 "나에게 지령을 내리는 상부"라고 증언한 계부 김동순은 2012년 7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무렵, 원정화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06년부터 원정화를 최초 수사했던 소진만 전 경기경찰청 보안수사대장이 "간첩을 잡은 게 아니라 만들었다"고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다. 계부인 김동순이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정작 원정화는 유죄를 받은 것도 수사 결과의 신빙성을 떨어뜨렸다.
원정화의 연인이면서, 그가 간첩이라는 걸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황 중위 측도 사건이 조작됐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당시 강압적인 수사와 회유·협박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 원정화도 출소 이후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 자신의 과거 행적이나 간첩 활동의 실체에 대해 모순되는 발언을 하거나, 당시 수사기관이 사건을 실제보다 부풀렸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가가 실적을 위해 탈북민 사회의 특수성을 이용해 '만들어낸 간첩'이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완벽하게 실체가 규명된 정통 간첩 사건이라기보다는 당시 공안 당국의 실적 쌓기식 부실·조작 수사였다는 비판 여론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원정화 사건에 대해 "실체(간첩 활동의 일부)는 존재했으나, 그 실체가 국가(공안기관)의 수사 방식과 과장, 북한 출신이라는 특수성과 맞물려 크게 왜곡되거나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2013년 만기 출소한 원정화는 대한민국 검찰 및 경찰의 보호 아래 딸과 함께 지내고 있다. 탈북민 정착 지원 강연하거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실상과 자신의 과거 공작 활동을 증언했다. 2015년에는 자기 딸을 학대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