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의 극치' 축구협-홍명보, '국민 신뢰' 팽개쳤다

'무책임의 극치' 축구협-홍명보, '국민 신뢰' 팽개쳤다

김우종 기자
2014.07.03 15:48

[기자수첩]

지난달 30일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허정무 선수단장 등의 격려를 받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달 30일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허정무 선수단장 등의 격려를 받고 있다. /사진=뉴스1

'잘못은 했는데, 책임은 없는 이상한 나라'

삼국지 촉한의 승상 제갈량은 1차 북벌 당시, 전략적 요충지인 가정에 마속을 보냈다. 그러나 마속은 군령을 어긴 채 자신의 고집대로 작전을 펼치다 대패했다. 제갈량은 가정을 잃은 '1차적인 책임'을 마속에게 물었다. 울며 마속을 베다. '읍참마속'이었다. 이어 마속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본인도 승상의 자리를 스스로 내놓으며 패배에 대한 '2차적인 책임'을 졌다. 그렇게 그들은 잘못이 있은 뒤에는 책임부터 철저히 따져 물었다. 그 책임에는 '직책'과 '목숨'이라는 막중한 대가가 뒤따랐다. 책임(責任). 어떤 결과에 대해 지는 의무나 부담 혹은 제재.

홍명보 감독이 이끈 한국 축구 대표팀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2패'의 성적을 거뒀다. H조 최하위. 한국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1승도 거두지 못했다. 물론, 16강에도 오르지 못했다. 2002년 4강 신화 이후 2006년엔 원정에서 1승도 거뒀고, 2010년엔 16강까지 올라갔던 한국축구였다. 그러나 이번엔 처참한 성적으로 예선 탈락했다. 물론 경기에서 질 수는 있다. 하지만 선수 발탁과 기용 등에 있어서 독단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등 그 과정이 너무나도 좋지 못했다. 한국 축구의 퇴보였다. 국민들은 실망했다. 공항에는 사상 초유의 대표팀을 향한 '엿 세례'가 쏟아졌다. 그리고 이 실패의 중심에는 선수들과 홍명보 감독, 그리고 대한축구협회가 있다.

홍명보 감독이 알제리와의 조별예선 2차전에서 전반 3골을 내주자 침통한 듯 고개를 떨구고 있다. /사진=뉴스1
홍명보 감독이 알제리와의 조별예선 2차전에서 전반 3골을 내주자 침통한 듯 고개를 떨구고 있다. /사진=뉴스1

한심한 경기력과 졸전. 처절한 실패다. 그리고 이 실패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을 누군가가 반드시 져야 한다. 실패로 응당한 대가를 치르는 전임자들이 있어야, 후임자가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아픔 속에서 규율과 령(令)이 힘을 발휘하고, 법과 원칙이 제대로 세워지는 법이다. 우선, 1차적인 책임을 질 사람은 선수 선발과 기용 등에 대해 전권을 휘둘렀던 홍명보 감독이다. 그 책임에 대한 대가는 대표팀 감독 경질 혹은 자진 사퇴다. 이어 2차적인 책임을 질 곳이 있다. 바로 홍명보 감독을 수장으로 임명한 대한축구협회 수뇌부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과 대한축구협회 모두 이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있다.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3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홍명보 감독을 유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기자회견에 나선 허정무 부회장은 "홍명보 감독에 쏟아지는 모든 질책은 달게 받겠다"면서도 "다만 협회는 이 상황이 홍명보 감독의 사퇴로 매듭지어지는 것은 최선의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에 홍명보 감독을 계속 신뢰하고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허 부회장은 "홍명보 감독은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런 감독이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어 가야 한다. 물론, 이번 월드컵에서의 모든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 앞으로 홍 감독은 더 좋은 지도자가 될 것이며, 대한민국 축구도 발전할 것이라 확신한다"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허 부회장은 계속해서 "월드컵 결과에 대해 큰 대회를 준비하기에 1년이라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에 협회가 더 책임이 크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사퇴가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책임론에서 아예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홍명보 감독이 어떤 책임을 지냐'는 질문에는 "홍 감독은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반성을 하며, 실패에 대한 원인을 깊게 절감하고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실패했다고 책임지고 물러나면, 그것도 문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실패를 거울로 삼아 더 발전할 수 있다면, 비록 이번엔 실패했지만 앞으로 한국 축구를 위해 교훈이 되고,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책임론'에 대해 얼버무리는 자세를 보인 것이다.

결국 이번 '브라질 참사'를 놓고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협회나 감독 모두 응당한 책임은 지지 않은 채 어영부영 넘어가고 있다. 오히려 서로를 감싸 안으며 '자기 식구 감싸기'의 악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는 것 같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을 지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을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매번 서로가 책임을 떠넘기고 회피하기에만 급급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는 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대표팀이 그 구태를 재현하고 있다. 이제 더 중요한 것은 홍명보호가 팬들의 '신뢰'를 상당히 잃었다는 사실이다. 축구팬들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홍명보호를 '협회와 홍 감독, 그들만의 원팀'이라고 느꼈다. 앞으로 응원과 지지는커녕, 더 이상 국가대표 경기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팬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홍명보 감독의 유임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OSEN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홍명보 감독의 유임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OSEN

우리와 함께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러시아는 저조한 성적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파비오 카펠로 대표팀 감독을 특별 청문회에 부를 계획이라고 한다. 역시 16강 진출에 실패한 이웃나라 일본은 아기레 신임 감독을 선임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리와는 너무나 비교되는 행보다. 그들은 원칙대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우선 물은 뒤 앞으로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축구는 지금 어떤가. '파벌', '불통', '의리', '인맥', '밀실'. '말바꾸기', '결과 지상주의'. 그동안 한국 축구가 안고 있던 모든 병폐가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나. 이런 잘못된 점에 대해 협회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면서, 동시에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마땅한 일 아닌가. 그런 피눈물 나는 노력과 뼈를 깎는 자성이 있고 난 이후에 아시안게임과 아시안컵, 2018 러시아 월드컵을 논해야 온당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이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면서 장밋빛 미래에 대해서만 흠뻑 이야기했다. 국민들의 여론을 완전히 무시한 대한축구협회는 자기들끼리의 '의리'는 지켰을지 모르나 국민들의 '신뢰'는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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