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메이저리그 최초 흑인선수 재키 로빈슨 데뷔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고작 피부색 따위여서는 안된다"
-피 위 리즈(브루클린 다저스 주장·야유를 받고 있는 재키 로빈슨에게 다가가 포옹 한 후)-
한 선수가 걸어 나왔다. 함성으로 가득 차 있던 경기장은 순간 얼어붙은 듯 정적에 잠겼다. 이내 야유와 모욕적인 말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2만6000여명의 관중들이 내뱉는 욕지거리를 견뎌 보려는 듯 선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본명은 잭 루스벨트 로빈슨. 야구·농구·미식축구·육상 거의 모든 운동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어떤 종목이든 프로 리그에서 활약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흑인이었다.
야구에 뜻을 둔 그에게 허락된 것은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계 미국인의 리그인 ‘니그로리그’였다. 하지만 재키 로빈슨의 활약을 눈여겨보던 메이저리그의 브루클린 다저스는 조심스럽게 그를 영입하고자 했다.
물론 순조롭지 않았다. 마이너리그 생활을 하며 팀원들과 같은 호텔에서 지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지역 흑인 정치가의 집에 머물러야 했다. 플로리다 주의 경찰본부장은 재키 로빈슨이 경기에 참여한다면 게임을 취소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럼에도 그는 다섯 번의 경기에서 스리런 홈런을 포함해 총 4안타를 쳤고 MVP로 선발되었다.
1947년 시즌이 시작되기 6일 전, 브루클린 다저스는 재키 로빈슨을 메이저리그로 불렀다.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미국 민권법이 제정되기 16년 전. 흑인에게 투표권이 주어지기 18년 전. 제키 로빈슨을 혐오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팀원들을 향해 팀 매니저 레오 듀로처는 말했다. “나는 너희들이 동양인이든 흑인이든 얼룩말처럼 줄무니가 있든 상관없다. 재키 로빈슨은 경기를 잘 하고 있고 우리에게 돈을 벌게 해 줄 것이다”
재키 로빈슨은 의지를 다지고 다시 눈을 떴다. 69년전 오늘(1947년 4월 15일). 야유로 가득찬 에베츠필드에서 흑인선수가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한번 다져진 의지는 다시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통산 10시즌을 뛰면서 1382 경기에 출전해 1518안타 137홈런에 통산 타 3할 1푼 1리를 기록했다.
뛰어난 성적에도 협박은 끊이지 않았다. "다음 경기에도 나오면 42번(로빈슨의 등번호)을 총으로 쏴버린다"는 정체불명의 살해 협박에 시달리곤 했다. 동료였던 외야수 진 허만스키는 "우리 모두가 등번호 42번을 달면 누가 로빈슨인지 모를거야"라는 말로 재키 로빈슨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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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재키 로빈슨이 세상을 떠난 뒤 25년 후 그가 메이저 리그에 데뷔한 4월 15일은 '재키 로빈슨의 날'로 제정됐다. 이날 메이저리그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와 코치진, 심판진들은 등번호 42번이 표시된 저지를 입고 경기에 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