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 트윈스 사령탑 염경엽(58) 감독이 좀처럼 기회를 주기 어려운 이재원(27)의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염경엽 감독은 16일 잠실 롯데 자이언츠전을 앞두고 "문보경은 어제(15일) 조금 안 좋아서 지명타자로 계속 가야 할 것 같다. 아무 이상이 없어야 하는데, 조금 안 좋다고 해서 다시 이번 주는 지명타자로 간다"고 밝혔다.
문보경은 앞선 15일 잠실 롯데전 1루수로 선발 출장해 7회초 한동희의 파울 타구를 잡아내는 과정에서 펜스에 부딪혔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3루 파울 타구 수비 도중 펜스에 부딪힌 것과 비슷한 장면이었다. 당시에도 문보경은 허리에 부담이 생겨 시즌 개막 후 한동안 지명타자로 나섰다. 이후 1루수, 3루수로 차츰 복귀하는 과정을 거쳤으나, 이날 수비로 다시 계획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1루와 지명타자 자리에 문보경이 들어서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이 이재원이다. 반대급부로 시즌 전 코너 외야수와 2루, 3루 등 다양한 수비 포지션을 연습했던 천성호(29)는 문보경의 빈자리를 채우며 기회를 얻었다. 갑작스러운 문보경의 부상은 시즌 전 이재원 육성 계획에도 영향을 줬다.
이재원은 LG에서 가장 기대받는 우타 거포 자원이다. 2020년 1군에 데뷔해 2022년 13홈런으로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해 국군체육부대(상무) 소속으로는 퓨처스리그 78경기 타율 0.329(277타수 91안타) 26홈런 91타점 81득점, 출루율 0.457 장타율 0.643으로 2군 무대를 평정해 많은 기대를 받았다.
사령탑 역시 상무에서 자신감을 찾고 온 이재원에게 올 시즌 8번 및 지명타자로서 최소 120경기 300타석 이상의 기회를 주고 싶어 했다. 염 감독은 "문보경은 그렇게 일주일을 보고 다음 주에 다시 1루에 내보낼 것이다"라며 "문보경이 빨리 (3루 수비에) 나가야 (이)재원이가 기회를 받을 텐데..."라고 탄식했다.

다만 구단 안팎으로 복귀한 이재원에 대한 기대가 워낙 컸던 탓에, 이제 고작 시즌 11%(16경기)만 소화한 상황에서도 일부는 애가 탄다. 문보경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이재원의 이름이 툭 튀어나온 염 감독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지난해 천성호 때도 이토록 출전 문제로 속을 끓였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오히려 천성호의 성장이 LG에는 조바심을 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도 됐다. 천성호 역시 지난해 6월 LG에 오기 전까지 뛰어난 타격 능력에도 아쉬운 수비에 1군 기회를 못 받던 만년 유망주였다. 그 탓에 지난해 천성호도 불규칙한 출전 기회를 받았다. 그나마 천성호 개인에게 다행이었던 건 오스틴의 옆구리 부상으로 7월에는 많은 기회를 받았다는 점이다. 오스틴이 복귀하고 LG가 본격적인 순위 싸움을 시작한 뒤에는 다시 백업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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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천성호는 외야 글러브를 끼고 수비 훈련에 나서며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썼다. 이에 염 감독은 시즌 끝까지 1군에서 배제하지 않고 한정적이지만, 꾸준히 기회를 주며 응답했다. 천성호 역시 퓨처스리그 타율 0.315(929타수 293안타)로 2군에서는 더 이상 증명할 것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천성호는 결국 LG 이적 후 52경기 타율 0.255(106타수 27안타), OPS(출루율+장타율) 0.647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이 적은 기회를 살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들었고, 올해는 확연히 성장한 모습으로 주전급 활약을 보여줬다.
이재원도 퓨처스리그 통산 타율 0.294(1077타수 317안타), 출루율 0.407, 장타율 0.582로 2군에서 증명할 게 더 없다는 건 천성호와 동일하다. LG는 이재원에게 천성호처럼 내·외야를 오고 가는 수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콘택트 능력에 강점이 있고 기본적인 운동 능력이 있는 천성호와 KBO리그에서도 찾기 힘든 장타력을 지닌 이재원은 기대되는 역할이 다르다.

천성호가 나가지 못하는 동안 외야 수비를 연마했다면, 이재원에게는 적은 타석에서도 최대한 1군 투수들의 공을 경험하길 바랐다. 15일 경기에서 LG가 0-2로 지고 있는 9회말 2사에서 대타로 나선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올해 최준용은 김원중 대신 마무리로 나설 정도로 1군 정상급 투수의 구위를 보여주고 있어 이재원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최근 염 감독이 낸 과제도 비슷한 맥락이다. 염 감독은 지난 11일 잠실 SSG 랜더스전을 앞두고 "(이)재원이가 올해 1년은 실패를 통해서 왜 안 되는지 경험했으면 한다. 재원이는 아직 1군에서 제대로 뛰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 맞는다고 생각할 확률이 훨씬 높다. 타격 코치나 주위에서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모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원이가 성장하느냐 아니냐가 결정되는 순간은 올해가 아닌 내년이다. 올해는 성공보다 왜 내가 실패하는지 정확하게 인식했으면 한다. 그래야 마무리훈련부터 메커니즘 쪽에서 어떤 기본기를 채워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선수 본인의) 마음이 안 열리면 그만큼 늦어진다"라고 덧붙였다. 또 "결국 실패를 해봐야 절실해진다. 그 부분은 본인이 느껴야 하는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훨씬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시간이 빨라진다"라고 강조했다.
LG는 지난해부터 뛰어난 퓨처스리그 성적과 함께 팀 복귀를 앞둔 이재원에게 그라운드 안팎으로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이재원 본인의 성실함과 성공하고 싶은 열망은 팀도 모르지 않는다. 그저 그동안 수많은 거포 유망주들이 느꼈던 부담을 최소화해주려 했다. 사령탑이 애써 이재원의 수비 포지션을 장기적으로 1루수로 제한한 이유도, 타순은 8번 타자에 고정한 것도 같은 이유다.
계획이 틀어진 것도 아니다. 주전 선수의 부상으로 인한 백업의 역할 변화는 프로 무대에서 흔한 일이고 머지않아 3루로 복귀할 문보경의 부상도 일시적인 일이다. 아직 이재원의 진정한 2026시즌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