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대참사를 맞이한 대한민국 축구의 현주소는 참담하다. 역대 최저 순위인 최종 34위로 토너먼트 무대조차 밟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여정을 마쳤지만, 한국 축구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주역들은 모두 자취를 감췄다. 정작 고개를 숙이고 책임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것은 경기장에서 온 힘을 쏟아부은 선수들뿐이다.
대표팀 에이스 이강인(25·파리 생제르맹)은 3일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북중미 월드컵 일정을 모두 마친 소회와 함께 사과문을 올렸다. 이강인은 "이번 월드컵은 선수로서 많은 것을 찬찬히 돌아보게 만든 대회였다"며 "기대에 만족스러운 결과로 보답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 또한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강인은 이번 대회 A조 1차전 체코전에서 완벽한 패스로 황인범(페예노르트)의 득점을 도우며 2-1 승리를 이끌어 1라운드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는 등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한국은 이후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연달아 0-1로 패배하며 조 3위로 탈락했다. 무승부만 거둬도 32강 진출이 가능했던 남아공전 직후 땅을 치며 눈물을 흘렸던 이강인은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가져야 하는 것은 아쉬운 마음보다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저 역시 제 몫을 더 잘 해냈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34·LAFC) 역시 30일 오전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로 사과했다. 그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실을 피하고 싶지도 않다"며 "가장 먼저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과 축구를 사랑해 주시는 팬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무거운 심경을 전했다.
네 번째 월드컵 무대를 씁쓸하게 마친 손흥민은 "제가 늘 말해왔던 '어린아이의 꿈의 무대'가 무너져 내린 것 같아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하고 마음이 아프다"며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시간과 마음에 끝내 보답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저 역시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사과했다.
이어 동료들을 향한 비난 자제를 당부하며 "선수들에게 너무 많은 비판과 상처를 주기보다는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이처럼 선수들이 팬들의 실망과 상처를 어루만지며 전면에서 화살을 맞고 있는 것과 달리, 정작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축구협회의 리더들은 철저한 묵묵부답과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멕시코 현지시간으로 조별리그 탈락 확정 다음 날 사퇴를 발표했던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은 지난 30일 귀국길에서 어떠한 취재진 인터뷰나 미디어 접촉 없이 굳은 표정으로 청사를 빠져나갔다. 성난 팬들이 입국장 청사에서 "홍명보 나가"를 외치며 거친 욕설과 비난을 쏟아냈음에도 아무런 얘기도 남기지 않은 채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홍 전 감독은 귀국 직후 책임을 지고 복기하기는커녕 곧바로 LA 자택으로 향하며 축구 팬들의 공분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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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행정의 수장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홍 감독 선임 파동의 핵심 장본인인 이임생 전 총괄이사 역시 참사 이후 철저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 회장은 탈락 확정 후 귀국만 했을 뿐 대참사에 대한 개인적인 사과나 책임 있는 행보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이 전 이사 또한 거센 비판 여론 속에 공식 석상에서 아예 모습을 감췄다.
이번 대표팀의 귀국길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별도의 해단식이나 귀국 행사, 미디어 활동이 완전히 생략됐다. 거센 비난 속에 불명예 퇴진한 사령탑과 침묵하는 수장들이 만들어 낸 풍경이다.
귀국길에서 자신들을 향해 환호와 격려를 보내주는 팬들을 향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연신 허리를 숙이던 손흥민과 남은 선수들, 대참사 뒤로 자취를 감춰버린 한국 축구 리더들의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