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구조가, 지면 심판을 욕하기 때문에 심판을 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귀를 의심케 한 문진희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의 답이었다. 지난 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 청문회 자리에서다. 그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에 단 한 명의 심판도 배출하지 못한 것에 관한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냉철한 분석이나 반성도 아닌, '남 탓'을 했다.
실제 지난 북중미 월드컵은 참가팀 수가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고, 경기 수도 자연스레 증가하면서 심판 규모도 역대 가장 많았다. 주심 52명, 부심 88명, 비디오판독심판(VAR) 30명 등 170명 규모였다. 그러나 한국 심판은 단 1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한국 심판이 월드컵 무대를 누빈 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마지막. 이후 16년째 월드컵에 나서는 한국 심판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축구는 북중미 월드컵에 심판을 보냈느냐'는 이정문 의원 질의에 문진희 위원장은 "못 보냈다"면서 "우리나라 구조가 지면 심판을 욕하기 때문에 심판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한국축구 심판들이 월드컵에 나가지 못하는 건 심판 수가 적기 때문이고, 그 원인은 경기 결과에 대한 책임을 심판에게 돌리는 우리나라 문화에 있다는 것이 현재 '축구 심판 최고 수장'의 진단인 셈이다. 심판 시스템이든, 심판의 수준이든 심판계 내부가 아닌 축구팬, 선수, 구단으로 그 원인을 돌린 것이다.
청문회 내내 오만에 가까웠던 태도는 인성의 영역인 만큼 뒤로 두더라도, 월드컵 심판 배출 실패는 심판위원장으로서 책임이 가장 큰 사안임에 분명했다. 지난해 정몽규 당시 회장 후보의 당선을 돕기 위한 불법 선거 운동 의혹 등 불편한 질문도 아닌, '월드컵 심판 배출 실패'라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 관련 질의이기도 했다. 심판 최고 수장으로서 혹은 심판위원회 입장에서 분석한 원인을 설명하고, 나아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해 답해야 할 상황. 문진희 위원장의 '남 탓'은 황당함을 넘어 허탈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심판을 욕하기 때문"이라는 문진희 위원장의 진단의 원인은 결국 '심판 수준'에 있다는 점이다. 문 위원장 표현대로 졌다는 이유로 심판을 욕하는 경우는 없다. 다만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결정적인 오심이 나왔을 때 그 비판의 화살은 심판에게 향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단순히 실수로 인한 오심일 수 있으나 그 실수가 반복되면 심판의 실력과 수준, 그리고 이를 끌어올리거나 검증하지 못한 심판위원회 등 심판계에 책임이 있다.
지난해 정몽규 회장이 4선에 성공하고, 공교롭게도 당시 불법 선거 운동 의혹이 있던 그가 신임 심판위원장에 선임된 뒤 오심 논란이 '폭증'한 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문 위원장은 "지난해(2024년)까진 잘못된 판정에 대해 오심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오심과 정심을 구분하고 싶었다"며 표면적인 오심 수가 증가한 이유를 설명한 바 있으나, 작년부터 특히 K리그에 유독 '대형 오심',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판정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심판 자질을 의심케 할 만한 오심을 넘어, 오심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비디오 판독을 거치고도 오심이 끊이지 않은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문진희 위원장이 K리그 오심 논란을 사유로 증인으로 출석했던 초유의 사태 역시도, 결국 문진희 위원장 체제 아래 심판 논란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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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중미 월드컵 심판 배출 실패, 궁극적으로는 국내 심판들의 실력과 자질 문제를 '지면 심판을 욕하는 우리나라 문화' 탓으로 돌린 위원장이라면, 굳이 한국 축구 심판 최고 수장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다. 가뜩이나 문 위원장을 둘러싼 온갖 잡음뿐만 아니라, 국내 심판계가 뒤늦게라도 변화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맹탕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은 이번 청문회에서 찾은 소득 중 하나는, 이처럼 정몽규 회장과 홍명보 감독은 떠났어도 여전히 개혁의 대상이 축구협회에 남아 있음이 확인됐다는 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