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KBO리그에는 '폭염'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경기 취소는 물론 경기 개시 시간까지 바꿔놓았다.
폭염 경보가 발효된 8월 4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의 경기 도중 20대 남성 관중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장에서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를 이용한 응급조치가 이뤄졌고, 관중은 의식을 회복한 뒤 병원으로 이송됐다.
선수와 관중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8월 5~6일 예정된 전 경기를 취소했다. 이어 6일 긴급 실행위원회를 열어 7~9일 주말 3연전까지 모두 취소하고 11일부터 리그를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경기 개시 시간도 바꿨다. KBO는 8월 11일부터 9월 6일까지 고척 경기를 제외한 전 경기의 개시 시간을 오후 7시로 변경했다. 기존에는 평일 오후 6시 30분, 7~8월 주말과 공휴일 오후 6시에 경기가 시작됐지만 이를 각각 30분과 1시간 늦춘 것이다. 기온과 체감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시간에 경기를 시작해 선수와 관중의 폭염 노출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폭염이 예상보다 일찍 완화되면서 KBO는 다시 경기 시간을 조정했다. 8월 25일부터 31일까지 평일 경기는 오후 6시 30분, 주말 경기는 오후 6시로 원래 시간에 맞춰 시작했다. 폭염 상황에 따라 경기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한 KBO의 결정은 선수와 관중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
다만 이번 경험은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경기 개시 시간을 모든 구단에 똑같이 적용해야 할까. 지역과 구단의 사정에 맞춰 좀 더 탄력적으로 운영하면 어떨까.
미국 메이저리그(MLB)를 보면 구단마다 경기 개시 시간이 다르다. 낮 경기만 해도 낮 12시 35분과 12시 40분, 오후 1시5분과 1시 10분, 1시 35분, 2시 10분 등으로 다양하다. 야간 경기 역시 오후 6시 10분과 6시 15분, 6시 38분과 6시 40분, 7시 10분 등 구장에 따라 제각각이다. 10개 구단이 같은 시간대에 일제히 경기를 시작하는 KBO리그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물론 MLB와 KBO리그의 환경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국토가 넓고 지역별 시차와 기후, 생활 패턴이 다르다. 방송사의 중계 편성도 경기 시간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경기를 하나의 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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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도 이런 방식을 고민해볼 만하다. 경기 시간의 완전한 자율화가 당장 부담스럽다면 KBO가 경기 개시 가능 시간대를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홈 구단이 지역의 교통 환경과 관중 특성 등을 고려해 경기 시간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일 경기의 개시 가능 시간을 오후 6시부터 7시 사이로 정한다면, 구단에 따라 오후 6시 15분에 시작할 수도 있고 오후 6시 45분에 시작할 수도 있다.
프로야구에서 경기 시간은 단순한 경기 운영의 문제가 아니다. 관중의 생활 패턴과 야구장 접근성, 대중교통 여건은 물론 경기 종료 후 귀가 시간까지 연결되는 중요한 마케팅 요소다.
NC 다이노스의 홈구장인 창원NC파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창원NC파크는 다른 구장에 비해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고속철도(KTX) 막차 시간도 빨라 기존 오후 6시나 6시 30분 경기에서도 관중들의 귀가가 쉽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폭염으로 경기 개시 시간이 오후 7시로 늦춰지면서 경기 종료 후 귀가 여건은 더욱 나빠졌다.
창원NC파크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인 마산역에서 서울역으로 향하는 KTX 막차 출발 시간은 오후 9시 43분이다. 막차를 타려면 늦어도 오후 9시 10분쯤에는 야구장을 나서야 한다. 오후 7시 경기는 물론이고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더라도 경기 종료까지 지켜보기 어려울 수 있다. 경기 시간이 30분 늦춰지는 것이 창원을 찾는 원정 관중에게는 단순한 30분 이상의 차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NC와 창원시가 연고지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도 주차장 확충과 철도 교통 개선이 주요 과제로 거론됐다. 야구장 자체의 시설 못지않게 관중들이 얼마나 편리하게 야구장을 오갈 수 있느냐가 흥행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의미다.
오후 7시 경기가 시행된 기간 창원의 관중 수에서는 눈에 띄는 차이가 나타났다. 8월 11일(화) KT전에는 6148명이 입장했고, 12일(수)에는 1만2216명이 찾았지만 13일(목)에는 다시 5822명으로 줄었다.
다음 평일 홈 3연전이었던 두산전에서는 18일(화) 5350명, 19일(수) 6196명, 20일(목) 6313명이 입장했다. 반면 삼성과 만난 21일(금)에는 1만4909명이 찾았고, 22~23일 주말 경기에는 이틀 연속 1만8128명이 입장했다.
7월과 비교하면 차이가 보인다. 평일 오후 6시 30분, 주말 오후 6시에 경기가 시작된 7월 한 달간 NC의 평일 홈 8경기 평균 관중은 1만1923명, 주말 홈 2경기 평균 관중은 1만2750명이었다. 반면 평일과 주말 모두 오후 7시 경기가 적용된 8월 11일부터 23일까지 평일 홈 7경기 평균 관중은 8136명, 주말 홈 2경기 평균 관중은 1만8128명이었다.
경기 수가 많지 않고 상대 팀의 인기와 홈팀 성적, 요일, 날씨 등 관중 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많아 이 수치만으로 오후 7시 경기의 영향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한 7월과 비교해 오후 7시에 시작한 8월의 평일 홈경기 평균 관중이 3787명 줄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늦어진 경기 시간이 지역에 따라 평일 관중의 선택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참고 사례로 볼 수 있다.
같은 경기 개시 시간이라도 지역에 따라 그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잠실과 고척, 인천과 수원, 대전과 대구, 광주와 부산, 창원은 교통 환경이 다르고 관중 구성과 생활 패턴도 다르다. 어떤 구장에서는 오후 7시가 직장인이 퇴근한 뒤 여유 있게 야구장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일 수 있지만, 다른 구장에서는 경기 후 귀가를 걱정해야 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10개 구단의 경기 개시 시간이 반드시 같아야 할 이유도 없다.
프로야구에서 경기 시간은 상품의 판매 시간과 같다. 백화점이나 음식점이 고객의 생활 패턴에 맞춰 영업시간을 정하듯 프로야구도 팬들이 언제 가장 편하게 야구장을 찾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고객을 가장 잘 아는 곳은 홈 구단이다. 어떤 시간에 관중이 많이 오는지, 가족 관중과 직장인 관중의 비율은 어떤지, 관중이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지, 경기가 늦게 끝났을 때 어떤 불편이 발생하는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경기 시간을 결정할 때 지금과는 다른 요소들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1990년대 중반 서울의 한 구단은 직장인 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 평일 경기 개시 시간을 오후 7시로 늦춘 적이 있다. 하지만 경기 종료 시각이 늦어지면서 기사 마감에 어려움을 겪은 한 신문사가 반발했고, 결국 해당 구단은 다시 오후 6시 30분 경기로 돌아갔다.
당시는 신문 마감 시간이 경기 개시 시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대였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이제 경기 시간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도 공급자의 편의보다는 야구장을 찾는 팬들의 편의가 되어야 한다.
물론 경기 시간을 전적으로 구단 자율에 맡기기가 어려울 수 있다. 방송 중계와 원정팀 이동, 선수단의 경기 준비 등 함께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따라서 KBO가 일정한 범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 홈 구단에 선택권을 주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올여름 오후 7시 경기는 폭염 시대 KBO리그가 새로운 경기 운영 방식을 고민하게 만든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는 전국 모든 야구장의 시계를 똑같이 맞추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구장의 특성에 따라 시계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