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EN=정승우 기자] 출발 순서는 19번째였다.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러나 안드레아 키미 안토넬리(20, 메르세데스)는 홈 팬들 앞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역전극을 완성했다. 이탈리아 출신 드라이버가 자국 그랑프리에서 우승한 것은 무려 60년 만이다.
영국 'BBC'는 7일(한국시간) "19번 그리드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그랑프리 정상에 오른 안토넬리의 놀라운 승리는 포뮬러원(F1)의 전설로 남을 것"이라고 조명했다.
놀랍게도 토토 볼프 메르세데스 팀 대표는 경기 전부터 기적을 예감했다.
볼프는 "우리 두 드라이버 중 한 명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설 것으로 생각했다. 조지 러셀이 앞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우승하거나, 몬차에서 키미가 물 위를 걸으며 우승할 것으로 봤다. 토요일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두 선수의 출발 위치는 무려 17계단이나 차이 났다. 러셀은 깜짝 폴 포지션을 차지한 피에르 가슬리(알핀)와 함께 첫 번째 줄에서 출발했다. 엔진 사용 한도 초과로 그리드 페널티를 받은 안토넬리는 뒤에서 두 번째 줄에 배치됐다.
안토넬리조차 경기 전에는 우승까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포디움에는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털어놨다. 현실적으로는 5위나 6위가 가능한 최고 성적으로 평가됐다.
모든 전망을 뒤집은 것은 안토넬리의 폭발적인 초반 질주였다. 첫 랩을 비교적 신중하게 운영하고도 14위까지 올라섰다. 2랩에서 샤를 르클레르의 페라리가 충돌하면서 레드 플래그가 발령됐을 때는 이미 12위였다.
안토넬리는 "레드 플래그가 나왔을 때 이미 12위였다. 그 순간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재출발 이후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한 랩 만에 8위로 도약했고 다음 랩에서는 랜도 노리스의 맥라렌을 추월해 7위에 올랐다. 가슬리와 맥라렌 두 대, 루이스 해밀턴의 페라리까지 차례로 제치며 선두권에 진입했다.
러셀도 안토넬리의 기세를 알아차렸다. 그는 "중립적인 시선에서는 대단한 경기였다. 몇 랩 만에 키미가 5위까지 올라온 것을 보고 우리와 우승 경쟁을 펼치겠다고 생각했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인상적인 초반이었다"라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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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는 교통 정리가 승부를 갈랐다고 평가했다. 그는 "안토넬리를 차별화한 것은 다른 차량을 뚫고 올라가는 능력이었다. 과거 루이스 해밀턴을 비롯한 위대한 드라이버들에게서 봤던 모습이다. 드라이버와 자동차가 하나가 되면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다"고 극찬했다.
안토넬리는 13랩에서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당시 선두 막스 베르스타펜과 격차는 불과 1.8초였다. 러셀은 그 사이에 자리했다. 3랩 뒤에는 메르세데스 두 대가 나란히 1·2위를 달렸다.
변수는 레이스 중반 발생했다. 랜스 스트롤의 애스턴 마틴이 첫 번째 코너에서 멈추면서 버추얼 세이프티카(VSC)가 발동됐다.
메르세데스는 안토넬리를 불러 새 타이어로 교체했다. 레드 플래그 상황에서 미디엄 타이어를 선택한 안토넬리는 끝까지 버틸 수 없었다. 반면 하드 타이어를 장착한 러셀은 피트로 들어가지 않고 선두를 유지했다.
메르세데스의 시뮬레이션은 원스톱 전략을 택한 러셀이 앞선 채 경기를 끝낼 것으로 전망했다. 안토넬리는 선두와 14.3초 차이, 사이에 차량 4대를 둔 상태로 트랙에 복귀했다. 남은 랩은 24바퀴였다.
안토넬리는 컴퓨터의 계산을 거부했다. 차례로 앞선 차량을 추월하며 러셀과 거리를 좁혔고 종료 5랩을 남겨두고 팀 동료의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다.
위기도 있었다. 종료 4랩 전 첫 번째 코너에서 러셀의 안쪽을 공략하다 코스를 벗어났다. 주행 라인 밖에 쌓인 타이어 찌꺼기 때문에 접지력을 잃고 자갈밭까지 밀려났다. 격차는 다시 1.7초로 벌어졌다.
안토넬리가 따라잡는 데는 한 바퀴 반이면 충분했다. 두 번째 레스모 코너에서 아스카리 시케인으로 이어지는 직선 구간에서 러셀을 추월했다. 우승 경쟁은 사실상 그 순간 끝났다.
페라리와 안토넬리를 두고 갈렸던 몬차의 이탈리아 팬들은 안토넬리가 결승선을 통과하자 일제히 환호했다. 이탈리아 드라이버가 이탈리아 그랑프리 정상에 오른 것은 60년 만이었다.
안토넬리는 "평생 기억할 경기다. 팬들의 응원이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게 했다. 매 랩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밀어붙이고 더 잘해 우승하고 싶었다"라고 감격했다.
이번 우승은 2년 전 몬차에서 겪은 악몽까지 지워냈다. 안토넬리는 F1 공식 데뷔 전이었던 2024년 이탈리아 그랑프리 연습 주행에 일회성으로 참가했다가 충돌 사고를 냈다.
볼프는 당시를 "안토넬리 경력에서 가장 힘겨웠던 순간"으로 표현했다. 그는 "키미와 가족 모두에게 어려운 시간이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그를 의심했다. 2년 뒤 그는 경력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하나의 원이 완성됐다"라고 말했다.
안토넬리의 성장 속도를 설명하면서는 인공지능까지 언급했다. 볼프는 "나에게 안토넬리는 끊임없이 스스로 개선하고 학습하는 인공지능 에이전트와 같다. 그만큼 빠르게 발전한다. 어린 나이도 끊임없이 나아질 수 있는 인지적·지적 능력에 도움이 된다"라고 평가했다.
안토넬리는 이번 우승으로 러셀과 챔피언십 격차를 66점까지 벌렸다. 러셀은 VSC가 없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전략이 안토넬리의 훌륭한 주행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는다"라고 인정했다.
역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답을 내놨다. 러셀은 "챔피언십은 분명 키미가 통제하고 있다. 그는 그럴 자격이 있다. 나는 반격이나 우승 경쟁을 생각하지 않는다. 매 경기에 집중해 가능한 최고의 결과를 얻으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키미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하고 있다. 이 격차를 뒤집는 것은 극도로 어려울 것이다. 현재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19위에서 출발한 안토넬리는 컴퓨터가 불가능하다고 계산한 승리를 현실로 만들었다. 2년 전 같은 장소에서 모두의 의심을 받았던 유망주는 이제 몬차의 역사와 F1의 전설 속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