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신인 땐 TV 중계도 귀했죠" 상상 못할 2026년 KBO 티켓 전쟁, 정근우는 그래서 더 감사했다 [창간22 인터뷰③]

"저 신인 땐 TV 중계도 귀했죠" 상상 못할 2026년 KBO 티켓 전쟁, 정근우는 그래서 더 감사했다 [창간22 인터뷰③]

김동윤 기자
2026.09.0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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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우 TVING 해설위원은 TV 중계조차 귀하고 관중석이 비어있던 2004년 프로야구 암흑기 시절을 회상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수확을 기점으로 한국 야구의 위상이 높아지고 팬들의 호응이 커지며 중흥기가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은 현재의 티켓 전쟁과 같은 인기가 계속되길 바라며 현역 선수들이 프로로서의 책임감과 경각심을 가져줄 것을 당무했다.
정근우 해설위원. /사진=김진경 대기자
정근우 해설위원. /사진=김진경 대기자
SK 와이번스 시절 정근우 위원. /사진=SSG 랜더스 제공
SK 와이번스 시절 정근우 위원. /사진=SSG 랜더스 제공

스타뉴스 창간 연도인 2004년 프로야구 풍경은 2년 연속 1000만 관중이 야구장을 찾는 2026년 현재와 사뭇 달랐다. 지상파에서 야구 경기를 보기도 쉽지 않았고 2002 한일월드컵의 열기에 밀려 빈 관중석이 중계 화면에 잡히는 일도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기 프로의 문을 두드린 선수들이 훗날 한국 야구의 황금기를 열었다. 2004년 시행된 2005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세대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8전 전승 금메달 신화를 쓰며 야구 중흥의 중심에 섰다. 스타뉴스는 창간 22주년을 맞아 공중파 중계도 귀했던 그 시기 입단해 프로야구 중흥기를 이끈 주역들을 만나봤다.

"안 믿었을 것 같습니다."

2004년 프로 입단을 앞둔 정근우(44) TVING 해설위원에게 2026년 프로야구의 풍경을 보여준다면 믿을 수 있었을까. TV를 켜면 야구가 나오고,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관중석이 가득 찬다. 이제는 인기 경기를 보기 위해 '티켓 전쟁'까지 치러야 한다. 정근우 위원의 대답은 단호했다.

정근우 위원은 한국 프로야구 전성기를 열어젖힌 주역 중 하나로 꼽힌다. 부산고와 고려대를 거친 그는 2005 KBO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7순위로 SK 와이번스에 지명됐다. SK에서 2007·2008·2010년 세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국가대표 2루수로 성장했다.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를 거쳐 2020년 은퇴할 때까지 통산 1747경기 타율 0.302, 1877안타, 121홈런, 722타점, 1072득점, 371도루를 기록했다. 2루수 골든글러브를 세 차례 받았고 KBO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가 첫 프로 무대에 발을 디뎠던 2004~2005년 무렵은 프로야구가 암흑기라 불리던 시기였다. 정근우 위원은 "당시에는 야구 인기가 그렇게 좋았던 적 자체가 없었다. TV 중계도 어쩌다 한 번씩 있었다. 어떻게 보면 TV 중계 없이 우리만의 경기를 했다"고 돌아봤다.

2, 3위 팀 맞대결에도 한산했던 2004년 프로야구 풍경.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2, 3위 팀 맞대결에도 한산했던 2004년 프로야구 풍경.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대표팀 당시 정근우 위원(왼쪽). /사진=뉴스1 제공
대표팀 당시 정근우 위원(왼쪽). /사진=뉴스1 제공

시설 역시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웠다. 대학 시절 고려대-연세대 정기전을 통해 만원 관중의 잠실구장을 경험했던 그는 프로 입단 후 지방구장을 돌며 놀랐다고 했다. 정근우 위원은 "어떻게 프로야구 구장의 라커룸이 이럴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열악한 곳도 있었다"고 떠올렸다.

분위기가 크게 바뀐 변곡점은 2008년이었다. 한국 대표팀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과 일본, 쿠바 등 세계 강호들을 연달아 꺾고 8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근우 위원은 이후 달라진 야구장의 공기를 몸으로 느꼈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 많은 팬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야구팬이 많아진 것만이 아니라 SK 대 두산 등 라이벌 구도도 만들어지면서 팬들의 호응과 관심이 커졌다. 좋아하는 팀을 더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치어리더 문화도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발전했던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그 자신도 태극마크를 달면 더욱 강해졌다. 정근우와 함께한 대표팀은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2009 WBC 준우승, 2015 프리미어12 우승까지 한국 야구의 최전성기를 열었다. 정근우 위원은 당시 대표팀에 대해 "태극기를 다는 순간 가서 모든 것을 다하고 와야 한다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고 했다. 이승엽(50) 전 감독 등 선배 세대가 보여준 국제대회의 투혼을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는 설명이다.

올림픽 금메달은 선수들의 시선도 바꿔놓았다. 정근우 위원은 "그 대회 전까진 미국, 쿠바, 일본이 쳐다보기도 힘든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며 쿠바와 친선경기를 크게 이겼고, 본 대회에서도 미국, 일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우리도 세계 톱 레벨에 올라갔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SK 와이번스 시절 정근우 위원(왼쪽)과 최정. /사진=SSG 랜더스 제공
SK 와이번스 시절 정근우 위원(왼쪽)과 최정. /사진=SSG 랜더스 제공
SK 와이번스 시절 정근우 위원(오른쪽). /사진=SSG 랜더스 제공
SK 와이번스 시절 정근우 위원(오른쪽). /사진=SSG 랜더스 제공

이어 "해외 진출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 이후 류현진, 김광현 같은 젊은 선수들도 나오면서 대한민국 야구가 오랫동안 팬들을 보유할 수 있었다. 그때를 계기로 더 많은 팬을 야구장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22년이 흘렀다. 정근우 위원이 기억하는 2004년은 허전했고 외로웠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경기장 티켓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제는 정반대다. 정근우 위원은 "예전에는 야구장 갈 때 티켓 구하는 게 너무 편했는데 지금은 티켓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정말 이런 상황이 만들어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웃었다.

다만 그는 지금의 뜨거운 열기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 낙관하지만은 않았다. 팬이 없던 시절부터 만원 관중 시대까지 모두 경험했기에 지금의 인기가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근우 위원은 "인기가 있다는 건 언젠가는 다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만들어낸 결과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인기가 있을 때 좀 더 결과를 내서 이 인기가 계속 갔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고 소망했다.

과거 야구에 있었던 '끈끈함'과 '헝그리 정신'을 떠올리면서도 이를 단순한 세대 비교로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선수들이 팬들의 사랑에 더 큰 책임감을 느꼈으면 한다는 바람에 가까웠다. 경기력과 성적은 물론 그라운드 밖에서도 프로라는 이름의 무게를 잊지 않아야 지금의 열기를 더 오래 이어갈 수 있다고 봤다.

SK 와이번스 시절 정근우 위원. /사진=SSG 랜더스 제공
SK 와이번스 시절 정근우 위원. /사진=SSG 랜더스 제공
정근우 해설위원(오른쪽). /사진=김진경 대기자
정근우 해설위원(오른쪽). /사진=김진경 대기자

정근우 위원은 "팬들과 소통하는 부분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한국 야구만의 응원 문화도 생겼고, 특정 선수를 좋아해 팬들이 야구장을 찾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면서도 "그럴수록 현장에 있는 선수들이 성적, 사생활, 경기에서의 태도 같은 부분에더도 프로라는 이름에 조금 더 경각심을 갖고 해줬으면 한다. 그렇다면 팬들도 우리 야구와 선수들을 더욱 사랑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대표팀의 국제대회 성적도 쉽진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최선의 결과를 냈으면 했다. 정근우 위원은 "2009 WBC 당시 샌디에이고 펫코파크나 다저스타디움에서 경기를 할 때 우리 교민들이 찾아와 응원해줬던 감정을 잊을 수 없다. 지금 선수들도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이기는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그것이 선수 인생에서 얼마나 큰 경험이고 앞으로 얼마나 큰 행복감을 주는지는 직접 느껴봐야 한다"고 응원했다.

TV 중계조차 귀했던 2004년, 정근우와 그의 동료들은 팬이 많지 않은 야구장에서 미래를 위해 뛰었다. 그 세대가 세계 야구에 겁없이 맞서며 팬들을 다시 야구장으로 불러들였고, 22년 뒤 한국 프로야구는 티켓조차 구하기 쉽지 않은 전성기를 맞았다.

정근우 위원은 "나뿐 아니라 선배들도 열악한 환경에서 계속 야구를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 야구가 좀 더 많이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야구를 했던 것 같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을 만들어주신 팬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야구를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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