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여자배구에서 고교 졸업 후 대학을 거쳐 프로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낯설다.
지난 2025~2026 한국배구연맹(KOVO) 여자부 신인드래프트 참가자는 총 58명. 고교 졸업 예정자가 56명이었고 대학생과 실업팀 선수는 각각 단 한 명이었다. 그중 프로의 선택을 받은 선수도 수련선수를 포함해 21명, 지명률은 36.2%에 그쳤다.
프로의 문을 통과하지 못한 선수들이 성인 무대에서 다시 성장할 공간도 넓지 않다. 2026 KUSF(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대학 배구 U-리그 여대부 참가팀은 광주여대와 경일대, 단국대, 목포과학대, 우석대, 호남대 등 6개교뿐이다. 한국대학배구연맹 등록 기준으로 해도 동의대 포함 7개교가 전부다. 다 합쳐도 대학리그 남자부 15개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광주여대 최성우(34) 감독이 2023년 처음 배구부를 만들 때는 지금보다 더 좋지 않았다. 여자 대학 배구는 고교에서 프로나 실업에 가지 못한 선수들이 운동을 이어가는 정도로 보는 인식도 있었다. '배구를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서 무엇을 하겠느냐'는 시선이 존재했고, 대학팀이 고교 팀과 연습경기에서 밀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최 감독은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다. 외국인 선수의 비중이 커지고 국내 선수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수록, 18세에 프로의 선택을 받지 못한 선수들이 다시 성장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봤다. 최 감독은 최근 광주여대에서 스타뉴스와 만나 "프로에 못 갔다고 해서 실패한 게 아니다. 나는 멈추는 것 자체가 실패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아이들이 프로에 못 가고 갈 방향을 잃으면 어디를 선택할까 생각했고, 대학도 하나의 대안이 되길 바란다. 냉정하게 1부가 프로라면 2부는 실업, 3부는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 고등학교 때 프로에 못 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대학에 와서 다시 자기 가치를 증명하고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 주장은 앞으로 더 현실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KOVO는 2027~2028시즌부터 여자부 구단이 외국인 선수 1명과 아시아 쿼터 선수 2명 등 외국 국적 선수 3명을 보유하고, 세 명 모두 동시에 코트에 설 수 있도록 제도를 변경했다. 국내 선수들의 출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차상현(52) 한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역시 지난 5월 한국의 세계랭킹이 40위까지 떨어진 현실을 언급하며, 국내 공격수들이 소속팀에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밀려 승부처 공격 경험을 충분히 쌓지 못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더욱 많은 선수가 더 오래 훈련하고 실전을 경험할 수 있는 '중간 무대'가 필요하다. 가장 필요한 2군 리그는 KOVO 구단마다 입장 차가 커 몇 년째 진전이 없다. 실업 배구가 그 역할을 비슷하게 하는 것이 뼈아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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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여대는 조금씩 대학 배구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광주여대는 창단 1년 만에 U-리그를 우승하면서 빠르게 대학 배구 강팀으로 올라섰다. 올해 대한항공배 전국대학배구 고성대회에서도 예선부터 결승까지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우승했고, 단양대회에서도 준우승했다.

선수들의 면면도 최 감독의 철학을 보여준다. 이소민(21)은 한때 배구를 그만두려 했지만, 광주여대로 편입해 중학교 이후 놓았던 세터의 꿈을 다시 잡았다. 공격수 경험까지 살려 세터와 아웃사이드히터를 오가며 프로 무대에 재도전한다.
손윤아(21)는 고교 졸업 당시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않았지만, 대학 MVP로 성장했다. 올해 입학한 이수인(19) 역시 고교 졸업 당시 "조금 더 열심히 했다면 됐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를 품고 대학에 왔다. 그리고 훈련에 매진한 1년 차에 전국대회 공격상까지 받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 감독이 말하는 성공은 이 선수들을 모두 프로에 보내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대학이기 때문에 배구 이후의 삶까지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광주여대 선수들은 저학년 때부터 전문 스포츠지도사를 비롯해 테이핑, 운동처방 등 진로에 활용할 수 있는 자격증 취득을 준비한다. 시기에 따라 운동과 공부의 비중도 조절한다. 선수들이 주말에 배구 레슨이나 심판, 봉사·재능기부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특히 자립심을 선수들에게 입이 닳도록 말한다.
최 감독은 "20살이 됐으면 독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언제까지 모든 걸 대신해줄 수는 없다. 프로에 다시 도전하든, 실업에 가든, 취업을 하던 자기 길을 만들어야 한다. 운동하면서 직접 돈도 벌어보고 사람도 가르쳐보고, 사회 안에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까지가 대학 교육"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그 철학은 자신의 경험에서 나왔다. 최 감독 역시 조선대 1학년 때 선수 생활을 접었다. 스스로 프로와 실업에서 경쟁력이 얼마나 될지를 냉정하게 판단한 뒤 군 복무를 택했고 검찰 수사관을 꿈꿨다. 학원비를 벌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도 경험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시행착오가 지금의 선수들을 가르치는 기준이 됐다. 최 감독은 "내가 겪었던 아픔이 있으니 우리 아이들은 나와 똑같은 길을 걷지 않았으면 한다. 운동할 때는 운동에 집중하고, 그게 안 됐을 때도 바로 다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준비돼 있어야 한다"라며 "선수들이 자기 것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할 때 현실적으로 방향을 잡아주는 지도자가 되려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훈련장에서는 누구보다 엄격하지만,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과 친구처럼 대화한다. 지도자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힘든 훈련을 따라온 선수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때로는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라고도 한다.
현재 광주여대에는 광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선수가 훨씬 많다. 최 감독은 이들을 "간절하거나 아픔이 있거나,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선수들"이라고 표현하면서 "배구가 이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그걸로 자신의 인생을 만드는 데 있어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선수들에게는 한 번의 실패로 배구 인생 전체를 평가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아직 한국 여자배구에서 아직 생소한 대학 배구의 좁은 길을 조금이라도 넓혀보려 한다. 현재로선 2023년 광주여대 이채은(22)이 페퍼저축은행의 지명을 받으며 V리그 여자부 최초의 대학생 드래프트 지명자가 된 것이 전부다. 하지만 올해 광주여대 에이스였던 김민채(20)가 수원시청 입단을 확정했고, 다른 선수들도 프로와 실업의 문을 다양하게 두드리고 있다.
모든 선수가 18세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20세에 성장하고, 누군가는 큰 부상을 견딘 뒤 21세에 자신의 전성기를 맞을 수도 있다. 최 감독은 그 시간을 허락하는 곳이 대학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가 광주여대에서 선수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두 번째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