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 하나가 내야를 빠져나가는 순간 대만 홈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유격수 엄준상(18·덕수고)은 달랐다. 몸을 날리듯 백핸드로 타구를 낚아챈 뒤 러닝 스로우로 정확히 1루에 꽂았다. 메이저리그(MLB)가 왜 엄준상을 '유격수'로 바라봤는지를 보여준 순간이었다.
엄준상은 현재 대만에서 열리고 있는 제14회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한국 18세 이하(U-18) 야구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출전하고 있다.
가장 강렬한 장면은 지난 7일 개최국 대만과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나왔다. 선발 하현승(18·부산고)이 1회말 2사 후 장이안에게 우익수 방면 3루타를 허용했다. 0-0에서 맞은 첫 실점 위기. 이어 4번 타자 황스야오가 풀카운트 승부 끝에 내야를 가르는 듯한 강한 타구를 날렸다.
그때 엄준상이 나타났다. 타구를 따라 이동하며 백핸드로 잡은 뒤 달리는 동작 그대로 1루에 송구했다. 몸의 중심을 완전히 잡을 여유가 없었지만, 공은 정확하게 1루수 미트에 들어갔다.
이 수비로 위기를 넘긴 하현승은 이후 5⅔이닝 2피안타 12탈삼진 무실점의 압도적인 투구를 펼쳤고, 한국도 대만을 2-0으로 꺾으며 이번 대회 최대 고비였던 첫 경기를 잡았다. 첫발 스타트와 타구 판단, 핸들링, 강한 어깨가 순식간에 모두 드러난 플레이였다.
엄준상의 존재감은 수비에 그치지 않았다. 0-0이던 6회초 1사 2·3루에서 유격수 땅볼을 때려 3루 주자 남현우를 홈으로 불러들이며 결승점을 만들었다. 이어 하현승이 투구 수 제한 90구에 걸려 내려가자 직접 마운드까지 올랐다. 첫 공으로 2루수 땅볼을 유도해 6회를 끝냈고, 7회에는 시속 149㎞ 빠른 공을 던지며 안타 하나를 허용한 뒤 견제로 주자를 잡고 두 타자를 연속 삼진 처리했다.

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엄준상을 150만 달러(약 20억 원)에 데려갔는지 보여준 경기였다.
일찍부터 스카우트들의 평가는 남달랐다. 1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2학년이던 지난해 '2025 퓨처스 스타대상' 미래스타상을 수상했다. 한 KBO 스카우트는 엄준상을 두고 "그냥 야구를 잘한다"라며 "감각적인 부분이 뛰어나고 유격수를 소화할 수 있는 강한 어깨가 가장 큰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야구 센스는 수비에서도 드러난다. 엄준상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기준 키 184㎝, 몸무게 85㎏으로 압도적인 체격을 지닌 유격수는 아니다. 수비 범위와 풋워크를 두고 스카우트마다 평가는 조금씩 갈렸다. 그러나 타구 판단과 핸들링, 강한 어깨와 송구 정확도에는 이견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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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수비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최근 어린 선수들에게 타격 훈련만큼 큰 흥미를 끌기 어려운 것이 반복적인 수비 훈련이다. 타격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기도 어렵고, 수없이 많은 타구를 받고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
엄준상은 반대다. 그는 올해 초 스타뉴스와 만나 "수비를 좋아하는 편이다. 수비 위주 훈련을 해도 재미있어서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라며 "수비 범위가 엄청 넓지는 않지만, 첫발 스타트에 자신 있다. 또 순발력이나 타구 판단에 조금 더 자신이 있어서 도전적으로 수비 하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대만전 1회에 나온 플레이는 엄준상의 설명 그대로였다. 정면에서 기다리지 않고, 타구가 빠져나갈 방향을 먼저 판단해 움직였다. 백핸드로 잡은 뒤 어려운 자세에서도 강한 송구를 했다. 스카우트들이 평가한 엄준상의 장점 역시 강한 어깨뿐 아니라 송구 정확도와 타구 예측, 핸들링이다.

또 다른 KBO 스카우트는 "엄준상은 어깨만 강한 게 아니라 송구 정확도도 좋다. 풋워크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바운드를 측정하는 능력과 핸들링으로 커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유형으로 강정호를 언급했다. 화려한 풋워크보다 강한 어깨와 빠른 핸들링으로 어려운 타구를 아웃으로 만들었던 유격수다. 공교롭게도 엄준상의 수비 롤모델도 강정호다.
투수로서도 최고 시속 153㎞를 던질 만큼 재능이 있다. 훈련 비중을 야수 9, 투수 1로 하고 덕수고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면서도 올해 위기 때마다 마운드에 올라 7경기 3승 1패 평균자책점 2.65, 17⅓이닝 3볼넷 18탈삼진,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 1.18의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이번 대표팀 마무리 투수 역시 가장 제구력이 뛰어나고 위기관리 능력이 좋은 그가 맡았다.
하지만 엄준상이 가장 애정을 드러내는 곳은 마운드가 아닌 유격수 자리다. 유격수로 키워주겠다는 애리조나의 제안에도 그래서 끌렸다.
수비 재능이 뛰어난 고교 유격수는 또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힘든 수비 훈련 자체를 즐기면서 "프로에서도 꼭 유격수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고교생은 또 남다르다. 대만전의 환상적인 백핸드 러닝 스로우가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