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44, 한 점만 내줘도 금메달은 일본의 것이었다. 하지만 피스트 위에 서 있는 한국의 주자는 '에이스' 오상욱(29·대전광역시청). 그리고 한 점씩 차근차근 따라잡은 오상욱은 마침내 승부를 44-44 원점으로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 회심의 한 방이 서로 엇갈리는 순간, 한국과 일본 모두 자신이 점수를 땄다고 확신한 듯 포효했다. 서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며 기쁨을 만끽한 순간, 이내 비디오 판독이 이어졌고 결과는 한국의 승리였다. 오상욱은 피스트 위에 그대로 선 채 시크하게 웃었고, 동시에 동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서로 얼싸안으며 금메달의 기쁨을 함께했다.
오상욱을 필두로 박상원(이상 대전광역시청), 도경동(대구광역시청), 후보 황희근(한국체대)으로 전열을 꾸린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26일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시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하계아시아경기대회 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결승에서 홈팀 일본을 45-44로 제압했다.
이로써 한국 남자 사브르는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2022 항저우 대회(2023년 개최)에 이어 이번 대회까지 4대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펜싱 역사상 남녀 사브르를 통틀어 단체전 4연패를 달성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개인전 금메달에 이어 이번 단체전에서 우승을 함께한 오상욱은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두 번째 2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오상욱은 지난 항저우 대회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2관왕'에 성공했다. 지난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당시 22세의 막내로 출전해 따낸 단체전 금메달까지 더하면 그가 아시안게임 무대에서 수확한 금메달만 무려 5개에 달한다.
한국은 세계랭킹 2위답게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토너먼트를 통과했다. 16강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한국은 8강에서 인도를 45-25로 완파했다. 이어 준결승에서는 홍콩마저 45-24로 제압하며 결승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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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 초반 분위기는 완벽했다. 첫 번째 주자로 피스트에 오른 박상원이 고쿠보 마오를 상대로 5-3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이어 2라운드에 나선 오상욱과 3라운드 도경동이 연달아 5점씩 뽑아내는 동안 단 2점과 3점만을 내주며 점수 차를 15-8, 더블 스코어 가까이 벌렸다. 일본의 추격전이 펼쳐진 4~6라운드에서도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발휘한 끝에 30-26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7라운드에서 뜻밖의 악재가 찾아왔다. 발목 통증을 안고 투입된 도경동이 일본의 맹렬한 공세에 고전하며 2점을 내는 동안 9실점을 헌납한 것. 한국이 32-35로 역전을 허용했다.
침체된 분위기를 끌어올린 건 박상원이었다. 8라운드에 출격한 박상원은 거침없는 전진 공격을 펼치며 무려 7득점에 성공, 일본을 흔들었다.
그리고 39-40, 1점 차로 따라붙은 상태에서 운명의 마지막 9라운드 바통을 넘겨받은 건 오상욱이었다. 피스트에 선 오상욱은 고쿠보 마오에게 연달아 점수를 내주며 41-44 매치포인트까지 몰렸다. 단 1점만 더 내주면 금메달이 날아가는 절체절명의 순간.
이때 오상욱의 진가가 발휘됐다. 특유의 압도적인 리치와 함께 한 박자 빠른 타이밍을 앞세워 점수를 연거푸 올렸다. 1점씩 차근차근 따라잡은 오상욱은 마침내 44-44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 1점 승부 상황에서 역습을 성공시키며 포효했다.

오상욱은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의 전성기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했다. 8년 전 대표팀의 막내 패기를 앞세웠던 그는 '어펜저스' 황금세대의 바통을 온전히 이어받아 어느덧 팀을 이끄는 맏형으로 우뚝 섰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 통증이 재발하고 세계 정상급 신예들의 거센 도전에 직면하며 우려 섞인 시선이 일각에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오상욱의 클래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 1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월드컵과 5월 이집트 카이로 월드컵 개인전을 잇달아 제패했다. 이어 6월 아시아선수권에서도 2관왕을 차지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개인전과 단체전을 모두 쓸어 담으며 최정상의 자리를 굳게 지켰다.
뉴스1에 따르면 오상욱은 우승 후 "41-44에서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했다. 몇 대 맞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데이터를 쌓았다. '이럴 때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다시 역전할 생각으로 경기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 판정 상황에 관해 "이겼다고 100% 확신했다. 상대가 어떤 공격을 할지 염두에 두고 때린 공격이라, 내가 이겼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2020 도쿄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2024 파리 올림픽 개인전·단체전 2관왕에 이어 이번 나고야 무대까지 평정한 오상욱에게 아시아 무대는 여전히 좁았다. 이제 다시 오상욱의 시선은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으로 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