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말 우리가 불안한 것들
지금 불안하지 않은 국민이 있을까. 그것은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는 게이트나 파업의 후유증 때문만도 아니다. 이런 사건들은 그 하나 하나만으로도 국기를 흔들만큼 충격적인 일이다. 게다가 이런 메가톤 급 악재들이 병발하고 있는 이 상황은 분명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만이라면 우리는 이 두려움을 참을 수 있다. 각종 게이트는 결국 사법기관에 의해 해결될 것이고, 파업으로 인한 손해는 더 큰 생산성으로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진정 불안해하는 것은 책임 있는 국가기관과 사람의 거짓말과 외면이다. 일이 터질 때마다 그들은 "나나 우리 조직과는 관계가 없다", "성역 없이 수사하라", "정치적인 음모"라는 등의 외침을 대변인의 목소리를 빌려 국민들에게 전달한다. 우리의 경험에는 이런 주장들이 대체로 그 반대로 결말났다. 이 때 국민에 대한 거짓말은 이미 또 다른 사건의 출몰로 따져 물을 겨를도 없고 대변인만이 거짓말쟁이가 돼버리고 만다.
미국 방송을 보신 분들은 유독 기자회견이 많다는 사실을 아실 것이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이 수시로 기자들 앞에 직접 나타나 현안 문제에 관하여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 가을 9.11 테러 이후엔 이틀이 멀다하고 부시 미대통령은 기자들 앞에, 다시 말해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때는 하루에도 여러 번 국민과 세계를 향해 미정부의 입장을 호소한 적도 있다. 미국민들은 테러의 충격 속에서도 정부가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지는 수족관을 들여다보듯 알 수 있었고, 정부가 대공방위에 허술했음을 탓하기는커녕 더 한층 강한 신뢰를 보내고있다.
이렇듯 국가기관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여 발표하고, 국민의 궁금증을 대신하는 기자들과 문답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속성이다. 국가기관은 국민의 선출로 구성된 기구이므로, 국민이 맡긴 일에 대해 보고하고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고, 국민은 그 일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국가와 국민 사이에 거짓이 자리할 수 없으며, 국가기관은 국민과 만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국민에 대한 속임수와 외면은 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것이다.
기자회견은 국가기관이 국민과 만나는 자리다. 자신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밀어 부치려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업무보고와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을 말하여 검증 받는 자리이다. 그런데 우리는 요즈음 국가기관과 기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TV와 라디오로 중계되는 공개적인 기자회견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대변인 뒤에 숨지 않고 직접 국민 앞에 나서지 않는 이유가 무얼까.
더구나 "국민의 정부"라고 하면서. 사태가 급박하다는 인식이 팽배한데도, 국민을 설득하려고도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 불안해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현실의 어려움보다도 책임 있는 사람의 거짓 없는 맑은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우리가 어디를 향해 어디쯤 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슈투데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