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영국, 한국이 변화의 축"

[기고]"영국, 한국이 변화의 축"

이문종
2002.04.08 08:08

케임브리지 코리아 콘퍼런스, 한국이 변화의 축

 케임브리지대학교에 영국에서는 최초로 한국학 연구기관이 설립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학교와 한국 지도층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패한 직후 이 학교의 클레어 홀에서 머물며 연구생활을 한 적이 있고 작년 12월에는 이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은 바 있다.

 그렇지만 최근에 영국에서 고조되고 있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 대한 관심을 이것만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영국은 이제는 비록 미국처럼 국제관계를 좌지우지할 실질적인 힘과 수단을 가진 나라가 아니지만, 한때 세계를 경략해 본 경험에서 얻은 특출한 능력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의 정세 흐름과 그 민감한 변화를 읽어 내고 여기에 자국의 이해관계를 결부시키는 능력이 그것이다.

 언제부터인지 파이낸셜 타임즈에는 이틀이 멀다 하고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관련 분석기사들이 계속 실리고 있는데 이 달초의 “아시아가 눈을 뜨다(Asia awakes)"라는 기사에서도 그런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이 기사는 그 동안 일밖에 모르고 소비에 인색하던 동아시아지역에서 최근 들어 중산층 가계를 중심으로 소비에 대한 효용이 훨씬 커지고 이를 위해 차입도 적극적으로 늘려 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도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동아시아의 소비자혁명이 향후 미달러화와 세계경제에 대해 큰 함축을 지니고 있음을 넌지시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이 대폭의 경상수지 적자를 겪으면서도 경제를 탈없이 꾸려올 수 있었던 것은 세계로 유출된 달러화가 다시 자국의 금융시장으로 속속 환류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한국,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등이 포진하고 있는 동아시아지역은 세계 교역에서 상당히 큰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누리고 있고 외환보유액의 순위도 상위 1~5위를 휩쓸고 있다.

 동아시아의 소비자혁명은 돈이 소비활동에 충당되느라 이 지역 내를 돌며 계속 머무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자금잉여가 미국으로 환류되던 종전의 세계자금흐름의 패턴은 많이 달라질 수가 있다. 이는 기조적으로 미달러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1990년대 전반 이후 강한 달러화를 표방하며 장기활황을 이끌어 왔던 미국의 대내외 경제정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영국이 동아시아와 한국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시각의 연장선에서라는 것이 정확한 말일 것이다. 동아시아지역은 앞으로 세계의 정치경제에 미칠 강한 ‘역동성’ 때문에 외환위기 이후에도 변함없이 주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동아시아지역에 생기는 자유무역협약(FTA)은 참가국의 인구와 시장 규모를 볼 때 세계의 교역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만큼의 파급력이 있다. 남북한관계를 변수로 한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치관계는 미국의 세계전략과 강대국의 세력판도를 일거에 바꿀 만큼의 강력한 추동력이 될 수 있다.

 바로 그 동아시아의 한 가운데에 한국이 있는 것이다. 지리적 위치뿐만이 아니라 역할을 자임하기에 따라서는 동아시아에서 변화의 주역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은 얼마전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였지만, 영국은 남한을 ‘변화의 축’으로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한국학 학술회의를 영국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한국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재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세기 근대화의 격랑에 밀려 수동적으로 규정되는 국제관계 속에서 운신의 폭이 크게 제약되어 왔다. 이제 우리가 21세기의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잠재적 역량을 변화의 큰 조류에 실어 능동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안목과 전략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보즈워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자신의 연구발표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정치의 최대현안은 남북한문제 이전에 동서간의 지역문제라고 언급했다.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선출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들의 언행이 지역주의와 색깔론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 21세기의 강국」은 요원하기만 하다. 얽히고 설킨 강대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우리나라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잡을 수 있는 고차방정식의 해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기고〓이문종(런던스쿨오브이코노믹스 박사과정)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