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빠름과 느림의 변증법
몇해전 이집트에 다녀왔다. 한국 교민은 500여명 정도였는데 거기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아랍어를 전혀 모르는 한국인이 이집트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얄라얄라"라고 한다. "빨리빨리"라는 뜻이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특성은 은근과 끈기라고 우리는 배웠다. 그러나 사회의 엄청난 변화속도에 우리는 이미 무감각해져 있다. 문제점은 생각할 시간도 없다. 은근과 끈기는 이제 찾아볼 수도 없고, 미덕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 어디에 기다림이 있는가? 모든 일의 신속처리를 철칙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짧은 시간에 이뤄낸 경제성장이 우리의 자랑이 아니던가?
빨리빨리 문화는 근대화와 그 시점을 같이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나라들이 300년, 400년 걸려 이뤄낸 것을 30년에 이뤄낼 때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다. 1 더하기 1은 언제나 2다. 빨리하는 것이 언제나 좋을 수 없다. 연평균 10%가 넘는 경제성장률만 자랑할 수 없다. 우리 기억에 생생한 IMF위기가 바로 그 결과물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우리는 기다리기를 싫어한다. 따라서 줄서기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줄이 있어도 이 줄, 저 줄 옮겨 다니기 비일비재다. 신호등 앞에서, 화장실에서, 계산대 앞에서의 줄 바꾸기, 국회의원들의 당적 바꾸기를 여기에 비유할 수 있다. 필자는 이를 탈 줄서기 현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탈 줄서기 현상은 줄을 벗어나기 위한 줄대기 작업, 줄대기 위한 편법과 권력 추구 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신속과 효율은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봐야 한다는 데서 과정을 무시한 결과주의로 귀착된다. 빨리가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경로를 찾을 시간이 없다. 따라서 획일주의 사회로 진행한다. 일상 언어와 삶이 폭력화되고 경쟁사회성이 가속화된다. 가속화된 경쟁사회의 결과물은 도덕성의 상실과 부패의 만연이다. 빨리 가기 위해 급행료가 필요하고, 편법과 타협을 해야 하는 사회로 진행된다. '단번에, 한꺼번에, 완전히'라는 극단적 용어들이 사회에서 힘을 얻고, 사회는 유연성이 상실된다.
그런데 그렇게 빨리빨리 한 결과 우리사회는 빨리빨리 만으로는 더 이상의 성장할 수 없는 한계점에 와있다. 개발만을 강조해온 대가로 자연도 더 이상 인간의 뜻을 그대로 받아주지 않는다. 상대를 생각하지 않은 일방적 개발과 이익추구로 이제 더 이상의 소득 증대도, 성장도 멈춰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경제위기이고, 환경문제와 도덕적 해이의 급박성이다.
천천히 가자. 천천히 가도 50년에 가는 만큼은 간다. 아무리 빨리 왔어도 결국 경제위기에 발목잡혀 빨리 달려온 시간만큼 손해보고 있지 않은가! 사회란 선두가 결승점에 도달했다고 해서 변화가 이루어졌다거나 움직였다고 할 수 없다. 사회의 마지막 주자가 결승점에 도달하는 시간이 돼야 비로소 열린사회, 즉 변화된 사회는 시작되는 것이다.<www.issuetoday.co.kr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