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용평가기관의 침묵

[기고] 신용평가기관의 침묵

윤영환
2002.06.07 13:25

[기고] 신용평가기관의 침묵

[편집자주] 윤영환 굿모닝증권 연구위원

지난 5월22일 무디스사는 엔론사태 이후 4개월에 걸쳐 진행해온 시장과의 대화를 정리한 평가정책을 발표했다. 한 때 검토하던 등급의 신축변경은 하지 않기로 한 반면, 유동성과 투명성에 대한 감시는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S&P도 유사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우리의 금융 및 산업환경 변화는 크고 빠르다. 그러나 우리의 신용평가는 단 한번도 제대로 평가정책이나 기준의 변경을 언급한 바가 없다. 단지 묵묵히 개별기업의 신용등급만을 관리할 뿐이었다. 당국이 각종 가이드라인을 주도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당국의 시장개입이 축소되고 시장 스스로의 조정능력이 강조되는 상황이 되었지만 평가회사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 채권시장은 중대한 변화를 맞고 있다. 시장에 유동성은 넘쳐 나는데 채권공급은 줄고 있다. 투자기관은 채권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이고 가격은 냉정을 잃고 있다. 채권시장 시스템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평가회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평가수수료 인하와 발행기업 축소로 수지를 맞추기 쉽지 않다.

공적자금 회수와 공기업 민영화로 국채발행이 축소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회사채 시장의 위축은 다시 한번 살펴볼 여지가 있다. 기업 재무구조 개선과 투자축소로 인해 회사채 발행수요가 감소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으나 전체적인 기업자금 공급은 확대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하거나 안 하는 것이다.

회사채시장의 선호가 편중되면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못하고 있다. 반면, 최근 신용등급이 올라간 일부 우량 기업의 상당수는 은행여신 등 대체 자금조달 여건이 개선되면서 회사채 발행을 줄이고 있다. 매우 우려되는 현상이다. 장기성 차입을 단기로 대체하는 것은 비용측면에서는 효율적이지만 안정성에는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적극적인 견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차입금 기간구조의 안정성은 신용평가의 중요 기준이므로 이러한 기업의 기회주의적 재무전략은 신용등급 하락의 이유가 된다. 지난 3월 미국 채권시장의 전설적 펀드매니저 빌 그로스가 GE를 공격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우리 기업들의 차입금 기간구조를 살펴보면 차입금의 약 45%가 1년내 만기가 도래한다. 일부 정책자금을 제외하면 가장 만기가 긴 회사채도 3년 이하가 일반적이다. 10~15년 만기가 주류인 미국의 회사채와는 비교도 안된다. 결국 기업들의 차입금의 양은 줄어도 단기차입금 비중이 과도하게 늘어나 기업의 재무구조가 여전히 자금시장의 변동성에 취약한 상태인 것이다.

국가신용등급이 A등급에 이르고 있지만 아직도 시장의 안정을 언급하기는 너무 멀다는 애기다. 장기회사채 발행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2001년 잠깐 태동 기미를 보이다가 다시 얼어버렸다. 수요여건이 아무리 개선되었다고 해도 기업 입장에서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데 먼저 나서서 0.4~0.6%포인트나 높은 금리를 부담할 이유가 없다. 결국 채권공급의 활성화와 기업의 재무적 안정성 제고를 위해 기업의 장기회사채 발행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은 신용평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번 기업 재무구조 개선을 이끈 것이 당국의 부채비율 가이드라인이었다면 이제는 신용평가기관이 평가기준의 천명을 통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할 시점이다. 취약한 단기자금시장과 기업정보의 투명성과 관련해서도 신용평가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크다. 애매한 지위에서 시장과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신용평가기관이 차가운 관찰자에서 뜨거운 참여자로 변신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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