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느 소송에 대한 단상

[기고]어느 소송에 대한 단상

윤영규
2002.06.21 12:56

[기고]어느 소송에 대한 단상

[편집자주] 윤영규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최근에 증권거래소의 주권상장법인이나 협회중개시장(코스닥)의 등록법인 중 상장이 폐지되거나 등록이 취소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전에 없던 현상이 생겨났는데, 상장폐지 또는 등록취소의 결정이 있었던 기업이 증권거래소나 증권업협회를 상대로 그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코스닥의 경우를 보면, 지난 1999년이나 2000년도에도 각각 30개 이상의 기업이 퇴출됐으나 해당 기업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부터 소송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시장의 건전성과 안정성이 강조되고 퇴출요건이 강화되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현상은 불가피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여기에서 개별기업에 대한 상장폐지나 등록취소결정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며 필자가 그러한 위치에 있지도 않다. 또한 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건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언급을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 것이나 변호사로서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법원의 판단을 지켜본 결과 법원의 판단내용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법률전문가가 아닌 사람에게는 다소 어려운 얘기가 될 수도 있으나, 작년 9월 경 모기업이 협회를 상대로 협회의 등록취소결정에 대한 집행정지를 구하는 소송을 행정법원에 제기한 경우가 있었다. 본래 행정법원에 제기하는 소송은 공권력의 행사 등 행정처분이 있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행정처분이 아닌 경우에는 행정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제1심 법원은 협회등록결정이나 그 취소결정을 공권력의 행사, 즉 국가의 사무로서 행정처분이라고 보았다. 반면에 제2심 법원은 협회등록취소의 결정을 국가의 사무라고 볼 수 없고 해당 기업과 협회 사이의 사법(私法)상의 계약관계를 해소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이유로서, 해당 소송이 행정소송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지금 이 사건은 대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증권업협회는 증권회사들의 회원조직으로서 증권거래법에서 그 설립과 업무의 기본적인 내용을 규율하고 있다. 이러한 협회의 등록취소결정이 공권력의 행사, 즉 국가의 사무인가의 여부는 증권거래법이나 관계법령 등 실정법의 해석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고 법원의 판단도 당연히 그에 기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거래소시장이나 코스닥시장 등 증권거래시장의 효율성, 증권시장제도 및 시장참여자에 대한 신뢰의 정도, 증권시장에서의 정부의 역할 등, 나아가 시장 일반에 대한 현대복지국가의 역할에 관한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해묵은 진부한 논란에 대하여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가장 완전경쟁시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증권시장에서의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 한국의 증권시장에서 투자자 또는 시장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어느 정도 건전한가, 시장감독자의 감독기능 또는 국가기구의 ‘후견’기능은 어떻게 시장의 효율성을 촉진하는가 또는 저해하는가 등 이러저러한 의문과 단상이 꼬리를 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IMF 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시장은 양과 질에 있어서 크게 발전해왔다. 비록 외부인의 시각이지만, 시장참여자의 상호작용의 규칙도 더욱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자율적인 능력과 책임의식이 지속적으로 증대될 것으로 믿는다. 이는 현재 증권시장업무의 일부를 국가의 사무로 보느냐의 문제와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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