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민연금 주권 행사해야

[기고]국민연금 주권 행사해야

김우찬
2002.07.02 12:57

[기고]국민연금 주권 행사해야

[편집자주]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있어서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기금만은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등 주주권한을 행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국민연금이 실질적으로 보건복지부의 영향력 밑에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기금이 주주권한을 행사하면 결국 정부에 의한 기업경영간섭이 초래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민연금기금의 주주권한 행사포기는 너무 많은 기회손실을 초래한다. 몇가지 제도만 개선하고 바꾸면 국민연금 주권행사에 따른 우려는 쉽게 불식시킬 수 있다. 첫째, 국민연금 자체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 21명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들 중 6명으로 돼 있는 정부측 인사를 줄일 수 있다. 보건복지부 이외 5개 부처 차관 중 농협중앙회, 사용자대표, 근로자대표와 중복되는 면이 있는 농림부, 산업자원부, 노동부 차관을 제외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둘째, 국민연금법에 주주권한 행사를 의무화하되 주주권 행사를 오로지 연금수혜자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되도록 명시화하면 된다. 최근 영국정부에서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기관 투자자들의 주주권한 행사를 의무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 미국의 공적연금은 주법과 판례법에 의해 주주권한 행사가 의무화되어 있다.

셋째, 주주권한 행사의 지침이 될 기업지배구조 기본원칙을 광범위한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마련하고 이를 공개하여 원칙에 입각한 주주권한 행사가 가능토록 해야한다.그러면 주주권한의 남용을 상당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실제 주주권한을 행사할 전담조직을 구축하고 전담조직의 권리와 의무를 명확히해야 한다. 업무의 성격상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주주권한 행사를 기금운용본부에 위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순한 주주권한 행사업무는 기금운용본부 내의 전담직원이 수행토록 하고 보다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는 (가칭) 의결권행사위원회가 다루도록 할 수 있다.

다섯째, 주주권 행사와 관련하여 외부기관으로부터 자문을 구함으로써 외부압력을 차단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공적연금기금인 CalPERS의 경우에도 주주총회 의안분석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다수의 외부자문 기관들을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주총회가 2-3월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기금 내부직원이 모든 사안에 전문성을 발휘하여 의결권을 행사하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여섯째, 주주권한을 행사하면 그 행사결과를 투명하게 연금 가입자들에게 공시해야 한다. 의결권의 경우, 행사 여부, 의결방향, 그 논거, 기업지배구조 기본원칙 부합여부, 불행사시 불행사 사유 등을 즉시 공시한다면 의결권 행사의 남용을 상당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연금 가입자들에게 주주권한 행사와 관련된 정보요구권을 인정하고 국민연금기금은 이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국민연금법에 규정할 수도 있다.

한편, 국민연금기금의 주주권한 행사 포기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전망을 암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연금수혜자인 국민의 재산권보호 의무마저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투자대상기업의 이사회가 부당내부거래 등을 승인함으로써 국민연금기금에 손해를 입히더라도 국민연금기금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말아야 하는가 아니면, 연금 수혜자들의 이익을 위해 관련 이사의 해임을 강력히 요구함으로써 부당내부거래의 재연을 방지해야 하는가.

국민연금기금의 주주권한 행사는 '새로운 형태의 관치'가 아니라 연금 가입자들의 이익을 위한 최소한의 의무다. '새로운 형태의 관치'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에 주주권한 행사를 포기한다는 것은 분명 직무 해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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