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담배끊기와 주식끊기(1)
한달쯤 됐을까. 얼굴 한복판에 붉은 반점이 생겨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술 탓일까. 아님 나도 모르게 가려워 긁었을까. 그도 아니면 혹시 몹쓸 병... 별 방정맞은 생각이 다 든다.
며칠을 그렇게 버티다 회사 앞에 있는 피부과에 갔다.(예전에는 대개 피부비뇨기과였는데 언젠가부터 슬그머니 비뇨기는 사라져 버렸다. 비뇨기에 대한 편견 탓일까. 아니면 피부 보다 비뇨기가 돈이 덜 되는 탓일까. 어쨌든 뭔가 수틀리면 비뇨기 정도야 쉽게 떼어낼 수 있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늘 그렇듯 의사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며칠간 겪은 내 고민과 맘고생의 절반, 아니 반의 반도 채 풀어 놓지 못했는데...
"가서 주사 한 대 맞고 처방전 갖고 가서 약 사 드세요. 약 떨어지면 다시 오고요."
그와 나의 만남은 거기서 그렇게 의례적으로 끝날 수도 있었건만...
"아, 잠깐. 그런데 의료보험카드를 안갖고 오셨네, 어디 근무하시죠?"
"예, 저 머니투데이라고..."
"그래요. 제가 잘 압니다. 주민등록번호만 적어놓으시면 제가 컴퓨터로 조회해서 보험처리해 드리죠. 그런데 한국일보 출신이세요. 거기 한국일보 출신이 많은데..."
(몹시 당황스럽고도 고마운 표정으로)"아니 저는 경향신문 출신인데요,그런데 머니투데이는 어떻게 그리 잘 아시나요?"
"제가 이 동네에서 밥먹고 산지가 20년짼데 그걸 모를까요. 또 봅시다."
'머니투데이는 생긴지 2년7개월밖에 안됐는데...무슨 소리야.' 어쨌든 의사의 코 끝에 걸린 미소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주인공 만큼이나 애매모호했다.
주사와 약은 잘 들었다. 그러나 "술을 먹으면 안된다"는 의사의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순전히 내 탓이었다. 내 직업이 기자라는 것도 문제였지만 주변에 기자가 널려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의사의 '금주명령'을 꺼내놓으면 그들은 나는 물론이고 의사마저 조롱했다. 시도 때도 없었다. 저녁 술자리에서건, 점심 식사자리에서건 기자 직을 걸고 '금주명령'을 업신여겼다.
의사와 싸워 이긴(아직 장담하긴 이르지만) 무용담을 장황하게 펼쳐놓는 영웅호걸형에서부터 '금주명령은 정언적 명령이어서 행위의 결과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철학자형, 한두잔쯤은 아무 관계없다고 한사코 술을 따르는 막무가내파(줄여 말하면 막가파. 명성에 걸맞게 이들이 가장 무섭다)에 이르기까지 나는 결코 감당해 낼 수 없었고, 얼굴에는 다시 붉은 반점이 피어 올랐다. 그래서 그 의사를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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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50대초. 사는 곳은 압구정동. 직업은 피부과 의원 원장. 이력으로 볼 때 돈 걱정할 리 없는 상류 소득계층. 그러나 사람을 겉만보고 판단하면 큰 코 다친다. 진료를 위해 두 번째로 그의 앞 자리에 앉은 나는 그로부터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했는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