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지분없는 회장님`

31일 기업 지배구조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개의 자료가 발표됐다. 하나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가 발표한 조사자료다. 이에 의하면 월드컴, 엔론 등 2001년 이후 파산한 미국의 25개 대기업들의 중역들이 이 지난 99~2001년간 무려 33억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치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글로벌크로싱의 게리위닉 회장이 챙긴 돈은 무려 5억달러다.
회사는 파산하여 수많은 직원이 일자리를 잃게돼도 경영자는 재직 중에 챙긴 돈으로 평생 잘살는 경영자중심의 미국식 지배구조의 허점을 잘 드러낸 것이다. 소유권이 분산돼 특정한 사람이 강력한 오너쉽을 행사할 수 없는 여건에서 CEO와 그 일당들이 제왕처럼 군림하며 자신의 뱃속만 채운 '경영자의 탐욕' 현상인 것이다.
다른 하나의 자료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출자총액제한집단 주식소유현황'이다. 이 자료에서 우리나라 재벌그룹 회장님들은 계열사 지분을 쥐꼬리만큼 갖고 있으면서도 계열사 출자라는 지렛대를 활용하여 자산규모가 몇십조원이나 되는 재벌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관행이 잘 드러나고 있다. 총수가 있는 11개 그룹의 총수 지분율은 평균 1.7%로 불과하나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에 대해 갖는 지분율은 41.6%에 달하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지분율이 그룹 자본금의 0.45%, LG 구본무 회장은 0.61%, SK최태원 회장은 2.5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지분 없는 회장님'이 그룹을 지배하는 현상을 미국의 ’경영자의 탐욕’과 대비하여 ‘오너의 탐욕'이라고 부르고 싶다. 경제논리로 보면 기업을 소유한 자는 소유한 지분만큼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총수가 지분을 찔끔 갖고있으면서 계열사 출자를 빌려 전 그룹을 지배한다는 것은 작은 돈과 위험으로 전 계열사를 지배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이러한 지배구조가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재벌총수가 부담해야할 투자위험을 계열사가 부담해 투자가 실패했을 때 공적자금과 같은 사회적 비용이 크게 들어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내돈이 아닌 계열사 돈으로 투자했으니 실패해도 내가 직접 손해볼 것은 많지 않으니까.
예를 들어 삼성 이건희 회장이 자기돈 1조원을 직접 들여야 했다면 논란이 많았던 자동차산업에 선뜻 진출했겠는가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에서 번돈으로 삼성자동차에 투자했으니 이건희 회장 본인으로서는 투자위험 부담을 그리 안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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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재벌회장님보고 어디서 돈을 구해와 본인의 지분율을 크게 올리라고 할 수 없다. 최선의 방법은 재벌 외부의 누군가가 끊임없이 재벌들의 투자의사결정이나 경영에 대해 감시, 감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은행이나 기관투자자, 시민단체 등이 제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잘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에 입각하여 기업이 물건 잘 만들고 돈만 잘벌면 됐지 지배구조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지분없는 회장님으로 대변되는 한국식 지배구조가 갖는 위험은 분명히 있다. 한국식 지배구조에 여러 가지 견제장치를 걸어야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