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로에 선 `105년 역사`
당나귀, 노비 등을 담보로 잡고 대출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105년 역사의 조흥은행은 그 시절에도 왕성하게 영업을 했다. 그 조흥은행이 지금 독자생존이냐 아니면 흡수합병이냐는 기로에 서 있다.
조흥은행은 1897년 설립 이래 한국금융사의 한 자락을 차지하며 영욕의 세월을 거쳐왔다. 일제의 식민지배, 한국전쟁, 개발독재 등을 거치며 때로는 굽히고 때로는 꺾이면서 질긴 생명력을 이어왔다. 특히 1980년대에는 이른바 ‘영동사건’으로 자본금을 다 까먹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IMF 외환위기 때는 부실은행으로 낙인찍혀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전체직원의 절반 가까이가 은행을 떠나는 비애를맛보는 등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그동안의 부실을 털고 도약하려는 순간, ‘흡수합병’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있다. 정부의 조흥은행 지분 블록세일 과정에서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51%의 지분을 매입하겠다는 인수 후보자가 무려 6곳에 이르는 데다 그중 한 곳은 정부 보유지분전량을 매입하겠다고 까지 나서고 있다.
원매자들을 경쟁시켜 높은 가격에 지분을 팔아 ‘공적자금을 회수하겠다’는 대주주 정부의 의지가 강력한데다 ‘대형화’라는 시대적 추세도 거스르기 힘든 상황이어서 조흥은행의 독자생존 주장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금융권 관계자는 "조상제한서로 불리던 5대 시중은행 가운데 조흥은행 마저 합병되고 나면 남은 것은 외국계로 넘어간 제일은행 뿐"이라며 "한 시대가 끝나는 허망함이 느껴진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조흥은행 지분 매각이 추진되면서 토종출신 40대 은행장으로 한국의 은행원들로부터 하나의 모델로 인식되며 기대를 모았던 홍석주 행장도 그 역량과 경영성과가 채 열매를 맺기도 전에 물러나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이런 마당에 한국 금융사에 105년된 은행이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은 게 아닐까라고 한다면 세상물정을 한참 모르는 소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