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금융의 탈중개화
간접금융시장에서 활동하는 은행들은 예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여 대출을 통해 자금을 운용한다. 고객들이 예금을 하는 행위는 저축행위로서 경제내 자금의 조성에 기여를 하게 된다는 면에서 국가는 저축자들의 예금을 보호하게 된다. 그러나 고객을 보호하기 위한 예금보호시스템은 곧 은행이라는 기관의 관점에서는 제 3자에 의해 자신의 부채가 보장된다는 얘기가 된다. 이로인해 은행의 자금운용이 방만해지는 모럴해저드의 유인이 나타난다. 이러한 방만함은 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간접금융이 발달한 경제내에서 기업의 행태를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라 한다. 기업들이 정부 주주 경영자 노조 사회단체 등 각종 이해관계자들을 골고루 적당하게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기업활동을 한다는 뜻에서다.
한편 직접금융시장에서는 자본시장시스템이 구축되어 유가증권 곧 주식과 채권을 통해 자금흐름이 일어난다. 기업이 발행한 유가증권을 투자자가 사들이면서 자금은 투자자에게서 기업으로 흘러가게 된다. 투자자는 자신이 위험을 부담하면서 유가증권을 매수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해당 유가증권을 발행한 기업에 대한 부단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기업은 주로 주주의 이익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기업활동을 하게 된다. 바로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 의 메커니즘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정에서 금융부문은 엄청난 공헌을 하였다. 주로 간접금융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은행으로 모인 자금이 계획경제와 관치금융을 통해 특정산업과 기업으로 흘러들어 갔고 일부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성공한 대기업은 이처럼 자금이 특정부문에 집중적으로 지원된 결과 탄생하였다. 그러나 은행부문은 이 과정에서 상당한 상처를 입었고 결국 IMF위기를 통해 상당한 부분 정리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150조가 넘는 공적자금이 바로 이처럼 자금이 기업에 집중 지원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실의 처리에 쓰였다.
얼마전 삼성전자가 올해 4천3백억원의 국내외 금융기관 차입금을 상환함으로써 금융기관과의 대출거래를 사실상 완전히 정리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은행차입금이 97년말 5조5천8백33억원에서 2002년 9월말 2백44억원으로 줄었고 2002년말에는 1백억원 미만으로 줄어들어 사실상 없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은행이여 안녕”이다.
이제 삼성전자의 9월말 기준 총차입금은 회사채 2조원 정도밖에 없다. 지난 97년말 총차입금 13조2천6백억원 중 11조2천8백억원을 5년 사이에 상환한 것이다. 대단한 성과이다. 그러나 이는 은행 입장에서는 충격이다. 가장 자금을 대출해주고 싶은 최우수고객이 은행을 떠나 직접금융시장으로 이동하는 금융의 탈중개화(disintermediation)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우려되는 부분은 삼성전자의 현금보유액이 2002년 9월말 기준 6조3천7백억원으로 급증하였는데 이 자금이 우량은행과 투신사 등의 단기금융상품 등에 주로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고의 기업이 소유한 6조원 넘는 자금이 투자재원이 되지 않고 단기부동자금화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쩐지 우리를 찜찜하게 한다. 물론 이는 철저하게 개별기업의 선택문제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미래에 깔린 불안함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걱정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삼성전자가 적극적으로 투자를 검토한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문제이다.
금융시장환경과 기업의 투자행태는 이처럼 질적으로 양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정부는 보다 세심한 정책을 통해 양 금융시장의 동시적 발전을 꾀하는 동시에 기업의 투자재원 조달을 위한 미시적 메커니즘을 보다 효율적으로 정립하기 위한 각종 방안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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