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SK배임 다른 그룹에 확산될까
비상장주식 평가와 관련하여 SK그룹에 적용된 배임 문제는 다른 재벌 그룹으로도 확산될 것인가?
충격에 빠진 구조조정본부
<에퀴터블>은 부호 재산을 추정하는 데에 있어서 비상장주식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비상장주식의 평가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져 왔다. 이에 따라 불과 두어달 전인 <에퀴터블> 2월호에서도 (원론적이기는 하지만) '상속 및 증여 유가증권의 평가'라는 제목하에 현실적으로 비상장주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가에 관한 규정들을 다룬 바 있다. 이 때의 결론은 시가가 없는 비상장주식의 경우 상속세법상 규정된 보충적 평가방법에 의하게 되며 이러한 평가방법은 특수관계인 사이의 주식 거래에도 대부분 준용된다는 것이었다. 비상장주식 평가에 대한 별다른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상속세법상 평가방법과 배치되는 경우 국세청으로부터 저가 양도나 고가 양도의 의혹을 받을 수 밖에 없고 특히 특수관계인간의 사이에는 이럴 경우 의제증여로 판단되어 고율의 증여세를 물 수도 있기 때문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한 상속세법상 평가방법을 따르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SK그룹 최태원 회장 구속 건은 이러한 결론에 일견 정면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큰 놀라움을 가져 왔다. (몇몇 그룹의 구조조정본부는 아마도 놀라움을 지나 커다란 충격에 빠졌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사건 발표 후 <에퀴터블>은 자문 회계사 및 변호사들과 논의를 가졌지만 대부분 전례가 없는 일이라 향후 재판 결과를 지켜보자는 것이 다수의 견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수사 관계자도 한 인터뷰에서 "(이를 문제삼은 것은) 우리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판례는 없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향후 특수관계인간 비상장주식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거래해야 하는가? 그리고 SK그룹 최태원 회장 사건에서 검찰이 정말로 문제 삼은 부분은 비상장주식의 평가 부분인가?
우여곡절 많은 보충적 평가 규정
우선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믿었던 상속세법상 비상장주식 평가에 관한 규정에 대해 짚고 넘어가 보자. 상속세법상 재산평가는 원칙적으로 상속개시일 현재의 시가에 의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시가란 불특정다수인 사이에 자유로이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에 통상 성립된다고 인정되는 가액을 의미한다. 하지만 비상장주식의 경우 일반적으로 이러한 시가가 있을 리 없다. 따라서 상속세법 제60조 제3항에서는 시가를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재산의 종류, 규모, 거래상황 등을 감안하여 계산한 가액을 그 평가액으로 한다는 (별 도움 안 되는) 일반적인 보충적 평가방법을 규정하고 있고 특히 비상장주식에 대해서는 상속세법 시행령 제54조에서 1주당 순손익가치와 1주당 순자산가치 중 큰 금액으로 하라는 규정을 두고 있다. 바로 이 규정이 SK그룹을 궁지에 빠뜨리고 다른 그룹의 구조조정본부를 밤 세우게 한 주범이다.
그런데 이 상속세법상 비상장주식 평가방법은 사실 우여곡절이 많은 규정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비상장주식 평가방법의 적정성(배원기)'라는 박사 논문에 의하면 본 규정은 크게 8번의 개정을 거쳐 왔다. 과거 1972년 초창기에는 비상장주식에 대해서 단지 순자산가치를 적용하라는 단순한 규정이었다. 하지만 한국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복잡해지면서 순자산가치만으로 비상장주식을 평가하는 데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 되었다. 가령 매년 1억 원을 남기는 회사라도 그 업종이 단순 무역이라면 순자산은 사무실, 책상, 전화 외에 이렇다 할 것이 없는 것이 자명한데 이럴 경우 피상속자는 별다른 세금 부담없이 알짜배기 회사를 넘겨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상장주식 평가시 순손익가치 개념이 도입되었고 이후 여러가지 변형을 거쳐 2000년부터는 순자산가치와 순손익가치 중 높은 큰 금액으로 한다는 현재의 규정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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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 규정의 과거 개정 중 주목할 것이 하나 있다. 1991년에 새로 적용된 규정에 의하면 비상장주식 평가시 순자산가치와 순손익가치의 단순평균을 사용하라는 규정과는 별도로 유사상장법인을 비교하여 평가하라는 규정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 규정은 지금도 많은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규정이지만 당시만 해도 코스닥 시장 등이 발달하지 않아 상장된 기업 종류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나마 상장된 기업들도 세세 분류기준에 의해 분류하기 힘들어 유사상장법인의 선정이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나아가 주당 순자산가액, 주당 순손익, 매출액 경상이익율이 상호 20% 범위 이내인 유사상장법인을 비교해야 한다는 엄격함 때문에 사실상 실효성이 없어 본 규정은 1993년 12월 31일자 개정시 폐지 되었다.
변칙 증여 및 상속을 막아라
현행 규정은 결국 순자산가치와 순손익가치 중 높은 금액을 채택하게 되어 있다. 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1999년 말 개정 전까지 사용되던 보충적 평가방법은 순자산가치와 순손익가치의 단순평균제도였다. 이러한 규정은 사실 세금을 절감하고자 하는 많은 부자들에게는 집중적인 공략 대상이었다. 막대한 자산을 보유한 기업을 상속 또는 증여하면서 최근 연도에 이익을 줄이는 방법으로 많은 세금을 줄일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령 100억 원대의 부동산을 보유한 부자가 이를 직접 상속하는 것보다 기업을 설립한 후 이 기업에 부동산을 넘긴 후 해당 기업의 이익을 50억 원 정도 낸다면 이 기업의 가치는 75억 원으로 평가되어 수십 억 원의 세금을 간단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자 정부는 변칙 증여 및 상속을 막는다는 취지하에 순자산가치와 순손익가치 중 높은 금액을 채택하였다. 이와 함께 상장 전 자녀 등 특수관계인에게 비상장주식을 증여 또는 매매한 후 상장 차익이 발생한 경우 과세하는 등 변칙 증여 및 상속을 막기 위한 과세당국의 노력은 계속되었고 급기야 금년에는 아예 상속세법상 포괄주의를 도입하여 변칙 증여 및 상속을 원천 봉쇄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주식맞교환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계열사간 지분이동을 전격 시행하게 된 배경에는 참여정부가 포괄주의를 도입하기 전에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 짓자는 의도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포괄주의가 시행되면 상속세법상 비상장주식에 대한 보충적 평가규정에도 불구하고 과세당국이 언제든지 시비걸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SK그룹 최태원 회장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데에서 암초를 만났다. 과세당국이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던 워커힐 주식의 평가에 대해 검찰이 배임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많은 해석이 나왔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의견을 빌려 과거 비상장주식을 세법 규정에 따라 계열사로부터 매입한 많은 재벌 오너 일가들에게 수사가 확대될 것이라는 견해도 나왔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향후 비상장주식을 통한 편법 증여 및 상속에 제동을 건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과연 그럴까? 본 사건에 대해 재판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에서 제기되지 않았던 주장 중의 하나는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비상장주식 거래 건과 삼성 등 과거 다른 재벌 오너 일가들이 행한 비상장주식 거래 건 사이에 법적으로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 근거는 우선 수사에 참여한 관계자의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다.
"차라리 현금을 주고 제대로 취득했으면 문제가 안됐을 수도 있다. 자금력이 달려 이런 주식 맞교환 방식을 쓴 것 같다."
즉 주식 맞교환이 아니라면 문제가 안 되었을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실 검찰이 문제 삼은 것은 워커힐과 (주)SK 주식을 맞교환하는 과정에서 한 주식은 비상장주식 보충적 평가 규정을 사용하고 다른 주식은 시가를 적용했다는 데에 있다. 물론 전자는 비상장주식이고 후자는 상장주식이기 때문에 당연해 보이기는 하지만 SK그룹의 편의적인 법 적용 때문에 전자 주식은 상대적으로 고평가되고 후자 주식은 상대적으로 저평가 되어 결론적으로 최태원 회장이 부당이득을 보고 계열사들은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상속세법의 흠결?
만일 이러한 해석이 맞다면 현행 상속세법상 비상장주식 보충적 평가규정은 유효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과거 계열사들과 비상장주식 거래를 했던 다른 재벌 오너 일가들은 일단 한숨을 내 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에서 문제 삼지 않고 국세청에서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해도 상속세법에 의거한 유사한 거래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내부거래 행위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01년 LG화학이 대주주들에게 LG석유화학 주식을 저가에 양도한 건에 대하여 '상속세법상 평가는 상속세 과세표준 산정을 위한 것으로 이를 곧바로 공정거래법상 개별정상가격으로 볼 수 없으며' LG화학은 '매각 당시의 주식거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볼 때 정상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거래하였기 때문에 본 건을 부당한 지원행위로 판단'한다는 의결을 내렸다. 특히 의결의 근거로서 공정거래위원회는 구체적으로 가격 산정시 경영권 및 영업권 등에 대한 프리미엄을 고려하지 않았고 1997년에 이미 기업공개를 염두에 두고 거래가격보다 높은 평가를 내부적으로 내린 바 있으며 LG석유화학의 전환사채 전환가격이 거래가격보다 높았다는 정황 증거를 제시했다.
그러나 공정위원회의 의결에 가장 먼저 제시된 점은 외부평가기관의 객관적인 가치산정과 제3자간 거래시 통용되는 각종 평가방법을 동원하여 가장 적절한 가격으로 주식가치를 산정했어야 하는데 단지 상속세법상 보충적 평가방법을 기준으로 했다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도 특수관계인간 비상장주식을 거래할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적정가치를 매기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였는가라고 지적하였다. 특히 우리나라 재벌들은 회계법인 등에게 비상장주식을 평가해 달라고 의뢰할 때에도 그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상속세법상 보충적 평가방법에 따른 가치를 계산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문제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에 따른 회계법인 등의 평가는 단순히 상속세법상 평가 금액이지 소위 '전문가의 판단'에 따른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상속세법으로 돌아가면 왜 이러한 관행이 생겼는가에 대해 수긍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상식적으로 특수관계인간 비상장주식 거래를 할 때 증여의제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속세법을 따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현행 상속세법에는 시가와 보충적 평가방법에 의한 규정만 있지 제3자가 평가한 공정한 가격이 세법상 인정된다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순손익가치의 계산에 있어서 최근 3년간의 순손익액 계산이 일시우발적인 사건 등으로 불합리할 경우에 신용평가전문기관이나 공인회계사의 산출가액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할 뿐이다. 과거 대부분의 변호사나 회계사가 상속세법상 보충적 평가방법을 따를 경우 최소한 법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여기에 있다. 보충적 평가방법에 의하지 않고 평가법인에 의한 가격으로 거래할 경우 증여의제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데 누가 나서서 법에도 없는 이러한 방법을 채택하겠는가? 게다가 평가법인에게 이러한 진정한 기업가치를 평가해 달라고 주문할 경우 그 비용이 약 5천만 원이나 나오는 상황에서 재벌은 그렇다치더라도 중소기업인들이 과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용을 지불해 가면 이러한 위험을 부담할 지도 의문이다.
시급히 개선해야 할 상속세법
그렇다고 현행 상속세법상 보충적 평가방법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성문법주의와 조세법정주의를 채택한 국가는 그 태생적 한계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정교하게 상속세법을 설계하더라도 부자들이 그 규정을 활용하여 세금을 줄일 가능성은 상존한다. (물론 포괄주의의 도입 후 어떠한 상황이 올지는 과세당국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현행 상속세법 제60조와 그 시행령에 따른 비상장주식 보충적 평가방법은 실제 기업가치에 비해서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충분히 상존하기 때문이다. 문제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현행 규정의 평가방법은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오히려 실제 기업가치보다 과대평가할 가능성도 있다. 현실적으로 발생해야 할 특수관계인간 비상장주식 거래에 있어서 기준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는 상속세법에 포괄주의를 도입하는 만큼 시급한 과제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