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市場과 재벌의 갈 길

[기고]市場과 재벌의 갈 길

이성규 국민은행 부행장
2003.03.28 16:52

[기고]市場과 재벌의 갈 길

프랑스의 경제학자, 세이(Say)의 법칙은 말한다. 공급은 수요를 창조한다고. 그랬다. 공급이 넘치면 가격이 떨어질 것이고,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가 증가한다. 결국 수요와 공급은 맞아 들어가는 것이다. 시장의 조절이다. 20세기 초, 현대적 의미에서 자동차의 대량생산체제에 첫 시동을 걸었던 포드(Ford). 동시에 최저임금수준이란 것을 도입하면서 동종업계에 비해 파격적으로 끌어올렸다. 결코 사주(社主)의 자애로움 때문만은 아니다. 포드사가 만든 모델의 차를 사려면, 이 정도의 임금수준이 되어야만 구매자가 될 수 있다고 여겼던 까닭이다.

이러한 공급중심의 사고는 케인즈(Keynes)가 등장하기까지 지속됐다. 소위 시장의 실패 같은 것이 생겨난 것이다. 미국이 대공황이란 골 깊은 경기침체를 맞이하면서 암울하던 시절, 영국의 천재는 문제의 핵심으로 수요부족을 간파해냈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특효약으로 등장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케인지안(Keyesian)이다"라고 말할 정도로까지 그 이후 정부의 역할은 중요해졌다.

전후 세계경제의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하는 역사적 필연성속에서 정부의 역할은 시장의 역할을 누르고 올라섰다. 더이상의 경기변동은 없을 것만 같았다. 21세기가 언제 시작되었냐는 질문에 적지 않은 미래학자들은 1960년대 중반을 그 분할선으로 꼽는다. 60년대의 모습이 우리의 40년대나 50년대보다는 차라리 90년대나 지금의 2000년대에 더 가깝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갖추던 시기와 우연히도 일치한다.

마찬가지로 같은 60년대에, 처음 맞는 세계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은 잔류하던 경제적 낙관론과 정부 역할에 대한 믿음을 바꿔놓는 분수령이 되고 만다. 하이예크를 필두로 시카고학파의 일련의 학자들이 무뎌진 정부의 역할을 뒤로 밀어내자 시장의 역할이 우위를 되찾았다.

하이예크의 책에 감동을 받은 마가렛 대처는 석탄노조를 누른 후 영국 정부가 움켜쥔 공기업의 고삐를 풀고 민영화의 붐에 불을 당긴 것이 80년대. 90년대 들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러시아경제가 파탄으로 치달으면서 정부와 시장의 오랜 역할론 헤게모니 싸움은 시장우위로 확실하게 매듭이 지어졌다.

바야흐로 인터넷시대. 발빠른 투자자본이 매순간 지구를 휩쓸고 다니고, 어설픈 정부의 개입은 시장의 힘이란 이름으로 응징을 당하기 일쑤다. 요즘 시장의 힘은 한없이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 경제도 아시아 외환위기를 맞아 대우와 현대라는 거대재벌의 해체를 경험하였다. 그리고 가까스로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는 지금, 또 다시 'SK글로벌'이 분식회계의 파장으로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계열사 지원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어차피 계열구조도 그 의미가 사라질 것이다. 일부 거래계열사의 후속적 충격과 채권기관의 손실흡수로 결론이 날 것이다. 정부는 나설 수도 없으며, 또 나서야 할 만큼 시장의 충격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소액주주든 외국인투자자든 자본시장에서 남의 돈을 끌어다 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주주는 단순히 주주로 남든가, 굳이 회사에 남으려면 경영능력을 인정받아야만 가능하다.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SK그룹의 계열사들이 이번 기회에 어떻게 독립적으로 건전하고 투명하게 각 자가 자리매김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경제의 대외신뢰도는 달라질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의 시험은 중요하다. 재벌의 지배구조가 모범적으로 바뀌어가는 변모의 증거를 보여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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