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마음은 20대 몸은 40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필 그램 전 미국상원의원은 1933년부터 66년간 은행업과 증권업분리를 담고있는 '글래스 스티걸법'을 폐기하고 금융회사의 겸업화를 허용하는 '그램 리치 블라일리법`의 입법을 주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훌륭한 일을 했다는 찬사에 대해 "우연히 그 때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한 것일 뿐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라는 그의 말을 듣고 오랜 역사 속에서 서서히 개선·발전돼온 미국금융의 강점은 무엇이고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인지 새삼 생각해 보고자 한다.
현재 미국 금융제도의 가장 큰 강점은 '개인의 창의를 존중하는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금융회사에 대해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허용하고 문제가 있는 경우에 개입하여 제도개선 등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이러한 접근방법이 금융시장과 산업 효율성 제고에 기여했다고 본다.
금융감독과 관련해서도 연준의 그린스펀 의장이 인용하는 말인 '우선은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마라(First do no harms)'에서 그러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응급처치의 목적이 사람을 살리는 데 있지만 어설프게 손을 대서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그냥 놔두는 것도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역사가 짧고 해방 후 외국제도를 수입한 우리나라로서는 미국과는 다른 접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성장과정에서는 정부가 앞서 나가고 민간부문이 이를 따라가는 형태가 되었다. 이후 규모와 구조가 급변한 우리 경제는 IMF위기를 계기로 일시에 과거의 제도와 관행을 뜯어고쳤다.
1960년대부터 한세대동안 이룩한 ‘압축성장'에 상응하는 '압축개혁'이 추진된 것이다. 금융권의 감독체계와 제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등에서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금융감독기구의 통합화가 실현되었고 건전성 감독도 매우 정교해지고 선진화되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도 크게 개선되고 건전성도 제고되었으며, 산업측면에서도 겸업화와 대형화에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
물론 이같은 개혁의 많은 부분은 미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한 결과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의 개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는 없었다. 제도의 선진화는 많이 이루어졌지만 '마음은 20대지만 몸은 40대'라는 말처럼 과거의 관행이 많은 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우리의 의식과 새로운 제도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시장원리'를 외치면서도 당국의 신속한 개입에 의한 타율적이지만 손쉬운 해결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금융시장의 참여자들은 과연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여 '시장이 없다'는 비판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와 힘을 가진 것인지, 우리 국민과 경제는 시장 참여자들의 지루한 갈등해결과정을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와 능력이 있는 것인지 등등 금융선진화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요즘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위한 국가적 비전이 제시되고 있다. 2만달러가 주는 의미가 추상적이라는 지적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금융권에서는 6년 전 IMF위기라는 엄청난 코스트를 치르고 이룩한 제반 제도의 개혁성과에 우리의 의식을 맞춰나가는 노력으로 '2만달러 시대'에 한층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