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플라스틱 재앙

[광화문]플라스틱 재앙

유승호 증권부장
2004.01.12 08:13

[광화문]플라스틱 재앙

 ‘플라스틱 재앙’이 국가 금융시스템마저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것을 경제관료들이 예상치 못했던게 분명하다. LG카드의 유동성 위기가 ‘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했지만 합법적 해법을 찾지 못해 당황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은행 구조조정에 적용됐던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기업 구조조정에 적용됐던 구조조정촉진법 등이 무용지물이었다. LG그룹 대주주와 은행장들이 배임의 위험을 무릅쓰고 손실을 분담하는 식으로 일단 봉합됐다.

 LG카드가 유동성 위기를 넘긴다하더라도 우리 경제에 드리워진 신용카드 그림자는 여전할 것 같다. 아직도 9700만장의 신용카드가 발급돼 있고 신용불량자 364만명 가운데 170만명이 신용카드로 인한 신용불량자이다. LG카드가 발급한 신용카드가 1400만장, 회원수가 815만명에 달한다.

 정부와 채권단은 LG카드에 투입한 3조6500억원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LG카드의 영업을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막대한 돈을 투입해놓고 회원들에게 “LG카드를 가위로 자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회원들을 신용카드에 더 중독시켜야 살아남을 것이다.

 1억장에 가까운 신용카드는 외상경제가 우리 경제의 시스템으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 물건을 외상으로 사서 쓰고난 뒤 아직 물건대금을 벌지 못한 사람이 과연 줄어들고 있는가. 신용불량자는 한달에 10만명씩 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인한 소득감소 뿐만아니라 신용카드 자체가 주는 유혹이 더하다. 신용카드사는 홈쇼핑업체가 충동구매와 쇼핑중독을 부추겨줘야 적자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실업률이 높아질 수록 카드 신용불량자가 양산될 위험은 더 커진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엄청난 손실을 입은 미국 금융회사들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뛰어든 부동산 담보대출시장에서도 타격을 입자 80년부터 중.하위층을 겨냥한 소매금융에 뛰어들었다. 당시 레이건 정부의 고금리 인플레이션 억제책이 실질소득 감소와 실업자 양산으로 이어지면서 신용카드는 중.하위층의 안전판 구실을 하며 급속도로 파급됐다. 직장을 잃을 것에 대비해 미리 여러 장의 카드를 발급해두는 사람들을 말릴 수 있는가. 국내에도 진출해있는 시티은행이 미국에서 사용한 광고문구다. “시티뱅크의 클래식비자카드는 어머니의 자궁속보다 더 나은 안전과 편안함을 제공한다..(중략)..직장이나 수입의 유무에 주눅들지 말고 전화하세요!”

 우리 경제에 씌워진 신용카드의 마법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친구나 동료, 은행직원에게 구구절절 아쉬운 소리하지 않고 100만원을 빌려 쓸 수 있는 신용카드를 스스로 잘라버릴 수 있겠는가. 은행 마이너스통장을 만들기 힘든 자영업자들이 카드를 반납할 수 있는가. 앞으로 당국의 규제가 강화되겠지만 그럴수록 신용카드사의 마케팅은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신용카드 문제를 단순히 카드사 유동성의 문제로 접근하는데 그치지 말아야한다. 외상경제를 대신할 대안시스템을 찾아야할 것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