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쉽지 않다. 쓰면 쓸수록 어렵다. 초중고교에서 읽고 쓰기를 배우고, 사회에 나와서는 글로 먹고 삶에도 한글은 어렵다.
한글을 어렵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조사다. 주격조사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글의 뜻과 맛이 크게 달라져 더 어렵다.
예를 들면, ‘그는 갔다’와 ‘그가 갔다’는 말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는 갔다’는 그가 갔다는 객관적인 팩트에 그가 가는 것을 지켜본 자의 주관적인 정서, 느낌이 가미된 것이다. ‘그가 갔다’는 그가 간 팩트를 객관적으로 서술할 뿐이다.
‘그는 갔다’와 ‘그가 갔다’의 차이와 다른 맛, 쓰임새를 구별하지 못하면 글을 읽을 때도, 쓸 때도 참 재미가 없거니와 혼란스럽기도 하다.
좋은 글은 짧고, 명료하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사랑해.” 이거면 충분하다. “정말 사랑해” 따위나, “진실로 사랑해”, 혹은 “진짜로 사랑해” 등과 같이 부사가 붙는 고백은 거짓일 수도 있고, 사실이더라도 거짓으로 들릴 수 있다.
큰 목소리로 웅변하는 고백이나, 절대 타협하지 않는 신념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것들은 불행하게도 다른 것들을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작은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나와 다름을 받아들이는 아량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신문을 읽기도 어렵다. 스트레이트 기사에는 ‘그가 갔다’ 따위의 객관적 팩트만을 담을 글이 나와야 하는데, ‘그는 갔다’는 개인 의견이 마구 뒤섞으며 혼란을 부채질한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뒤죽박죽으로 말을 하니까 청취자들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정서를 혼동하게 된다. 신문과 방송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정서를 얼버무리는 것은 아마도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일 게다.
불행한 것은 우리 모두가 어느새 이런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정서가 혼재된 말들을 너무들 쉽게 사용하고, 그러한 언어에 동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독자들의 PICK!
객관적 사실에 대한 파악 없이 여기저기서 엿듣고, 곁 본 것을 얼기설기 짜깁기 하고, 이도 모자라 '--카더라' 따위의 재미요소까지 가미해 부풀려 전달하고, 전해 듣는다. 객관적 사실은 자리를 잃게 된다.
진실과 사실은 다를 수 있지만, 객관적 사실이 자리를 잃는 순간 진실은 파묻히게 된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논하기에 앞선 반문명적인 작태이다.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 시대는 분명 21세기이건만 반세기이전, 혹은 20-30여년 전의 시대 상황을 보는 듯하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이는 반복이 아니라 후퇴이다.
수백년, 수천년을 반복해도 가치가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말과 글을 탄생시키고, 문명을 발전시켰음에도 의미없는 반복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은 후퇴일 뿐이다.
과학이론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복잡성 이론은 모든 사건을 단순한 우연에 의한 것으로 설명한다. “모든 것은 화학적 작용과 생물학적 반응에 의한 결과물일 뿐이다. 복잡성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것엔 의미도, 목적도 없다”는 게 복잡성 이론의 기본이다.
최근 우리 사회가 이념논쟁의 수렁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 복잡성 이론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는 여기에서 지면 끝이라는 화학적 작용과 생물학적 반응만 있을 뿐이다. 의미라야 고작 내 기득권, 목적이어 봤자 당리당략이다.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에서 우파와 좌파의 대립은 겨우 50년 남짓. 수천만년을 흐르고 있는 한강에 비하면 물 한 방울 가치도 안 되는 논쟁에 우리 사회가 함몰돼 있다. 이 사회가 지금 후퇴하고 있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정서가 시계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사용되지 않고 마구 헝클어져 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