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note]
더벨|이 기사는 08월30일(09:52) 머니투데이가 만든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얼마 전 한 통신대기업이 소프트웨어(SW) 입찰을 실시하면서 유지보수율을 4%로 한다는 전제조건을 걸었다. 국내 SW기업의 유지보수율이 10~12%임을 감안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치다.
하지만 사업 규모가 워낙 크고 이런 사업마저 놓친다면 당장 매출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판단 아래 입찰에 참여한 3개 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치열한 경쟁 끝에 이 사업을 따낸 SW업체의 대표는 “사업을 수주하고도 손해 볼 것이 뻔해 가슴이 답답하다”며 “스마트폰 열풍을 계기로 SW산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주장은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얘기”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SW업체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지고 있다. 국내 SW개발 업체로는 최초로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던 티맥스소프트가 워크아웃을 신청한데 이어, 1세대 SW기업인 핸디소프트마저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국민 SW기업이라는 칭호가 붙었던 한글과컴퓨터는 아홉 번째 주인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국내 SW업체의 경영이 어렵다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의 상황은 그동안 곪은 상처가 한꺼번에 터져버린 형국이다.
정부에서 수차례 SW진흥을 위한 지원책을 발표함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국내 SW업체 대표들은 대부분 “국내 SW산업은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구조가 고착화 돼 있다”며 “이런 구조에서는 대기업만 이익을 볼 뿐 하청을 받은 SW업체가 살아날 길이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SW산업의 법 체계는 건설산업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200억 원 규모의 사업을 발주하면 대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 120억 원에 사업을 수주한다. 적정 사업비가 180억 원인데 과도한 경쟁으로 60억 원을 깎은 것이다. 이윤추구가 최대 목적인 대기업이 이 손해를 감당할리 만무하다. 손해 본 60억 원은 고스란히 하청 업체들에게 전가된다. 하청 업체들은 다시 또 그 사업을 재하청 주고 이런 구조가 3~4단계까지 이어진다.
SW에 대한 가치 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점에서 신발, PC, 책, 가방 등을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을 당연시하지만 SW는 불법 복제를 통해 사용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국내 SW업체들도 개인용 시장은 아예 포기한지 오래다.
SW불법복제는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과 마찬가지의 범죄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에 대해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SW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과 일본에서는 SW불법복제를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이고 처벌 수위도 상당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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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대기업과 공공기관에서 발주하는 SW사업은 가격이 형편없이 낮다. 추가적인 개발에 대해서도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며칠 야근하면 해결되는 것을 가지고 돈을 내놓으라는 게 말이나 되냐는 주장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SW산업 육성을 위해 거액을 들여 SW개발자를 영입한다고 밝혔다. 단언컨대 이런 시도로 국내 SW산업이 발전하리란 헛된 희망은 아예 품지 말아야 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SW산업 발전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하청업체에게 지불하는 SW가격부터 먼저 현실화시켜야 한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SW를 공짜라고 생각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그래야 SW를 비롯한 고부가 가치 산업이 발전하고 국민 소득 2만 달러에 이어 3만, 4만달러 돌파도 가능하다. 과거의 제조업 위주의 사고방식에 안주해서는 선진국들의 하청이나 받는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국내에서 왜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