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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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사모투자펀드(PEF) 활성화를 위한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방향(안)'이 나왔다. 당시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사이에는 몇가지 논란과 충돌이 발생했다. 그 중 하나가 대기업이 지배하는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규제 여부였다.
사안의 핵심은 대기업이 30%이상 출자한 사모펀드는 대기업 계열사 주식을 못사게 하고, 행여 계열사로 편입한 기업이 있으면 5년내 매각을 의무화하는 내용이었다. "사모펀드를 통해 대기업이 계열사 확장을 도모할 수 있으니 이를 방지하자"는 게 주된 취지였다. 대신 대기업 출자비율이 30% 이하인 펀드는 출자총액제한제에서 제외를 시켜주는 방안도 검토됐다.
이 같은 사안을 두고 양부처간 힘겨루기가 만만치 않았다. 한쪽은 토종PEF 활성화를 추진하는 입장이었고, 다른 쪽은 이 제도로 대기업의 왜곡된 투자가 이뤄지지 않도록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수개월의 논란끝에 이 문제는 두 부처가 한발씩 양보하는 선에서 마무리 됐다.
그리고 사모펀드의 사이클인 7년이 지났다. 당시 공정위가 우려한 그대로 국내 사모펀드들은 기업의 계열사 확장에 도구처럼 사용되고 있다.
동양그룹은 계열사 확장과 상장을 위해 PEF를 데려왔다. 산업은행은 PEF를 통해 금호생명을 인수했지만 이 펀드의 최대 LP가 산업은행이고 추후 산은지주로 금호생명을 포함시키는 게 예정돼 있다. 2004년때 우려사항으로 언급됐던 딜 구조가 고스란히 사용된 경우다.
리딩투자증권은 아예 관련된 운용사(GP)를 통해 경영권 담보 주식을 PEF에 담았다. 따져보면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살 때 PEF를 끌어들이는 것도 기업의 계열확장에 사모펀드가 이용되는 경우다. 대기업의 돈이 펀드에 직접 들어갔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 '계열사 확장에 펀드를 이용한다'는 기본 원리는 똑같다.
단순히 7년전 '시각'을 가지고 지금 시장을 판단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당시는 국민연금이 주식에 투자한다고 하면 "국민의 피땀이 어린 연금을 어떻게 위험한 주식 따위에 투자하느냐"고 반대여론이 몰아치던 때였다. 또 기업에게 출자한도를 줘놓고 이를 벗어나면 계열사를 거느리지 못하도록 정부가 옥죄던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슬퍼런 출자총액제한제는 MB정권 출범후 폐지된 지 오래고, 국민연금은 지금 연간 50조원이 넘는 돈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외환위기 주범으로 지목됐던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트라우마도 이젠 많이 사라졌다. 그 7년 동안 시장의 시각도 상전벽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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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행스럽게도 당시 공정위의 우려를 달래주는 일도 있다. 정부의 규제보다 더 무서운 시장 매커니즘이 맹렬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 바로 사모펀드의 '만기'다.
계열사 확장에 사모펀드를 이용한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남의 돈'이다. '투자'라는 감투를 쓰고 있지만 보장수익률을 따져보면 결국 '빚'과 다를 바 없다.
4400억원에 달하는 외부자금을 투자명목으로 끌어들여 동양시멘트를 상장시킨 동양그룹은 지난 3년간 주가를 올리지 못해 결국 홍역을 치르고 있다. 2금융권의 '유니버셜 뱅크'를 꿈꾼 리딩투자증권도 펀드만기를 감안하면 슬슬 W저축은행 매각 등을 준비하고 리딩투자증권 경영권 유지 준비도 해야 한다. 따져보면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대우건설의 잘못된 만남도 같은 경우였다.
이들에게 있어 재깍 재깍 초침이 흐르며 돌아오는 PEF의 만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감을 제공한다. 사모펀드에 있어 3, 4년은 눈코뜰새 없이 지나가는 시간이다. 어찌보면 이 기간내 돈을 되갚겠다고 계획한 것 자체가 무리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시장은 때론 '관치'보다 더 무섭고 냉정하다. 순수하게 자기 판단 아래 계열사 확장을 도모했으니 그 책염 역시 스스로 져야 한다. 덕분에 다른 시장의 플레이어들은 타산지석의 교훈을 얻고 추가적인 투자기회도 얻는다.
올해 이런저런 펀드들의 만기가 많이 돌아온다. 매번 만기 때마다 시장이 어떤 가르침을 줄 지 기다리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