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머니]비극의 경제학<1>폭로·죽음 소재로 몰리는 책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세요'
2010년 3월11일 입적한 법정(法頂)스님의 유언이다.
'무소유', '산에는 꽃이 피네', '아름다운 마무리'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 저서들을 썼지만, 입적 후 너무 많은 '돈벌이'로 남용될까 우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반면 올해 1분기 화제를 모았던 책은 단연 신정아씨가 출간한 책 '4001'이다. 유명인 사생활 '폭로'라는 입소무문을 타고 출간 당일 하루 만에 2만 부가 팔리더니 2주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최근 고인이 된 송지선 MBC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의 야구 관련 서적 '송지선 김민아의 시시콜콜 야구 인터뷰-토크 토크 야구'도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 탤런트 고 이은주씨 자살 후 전인권씨의 저서가 화제를 낳았고, 일부 언론 등에서는 '이지아 에세이'나올 것이라는 억측도 내놓고 있다.
이처럼 누군가의 '비극'을 소재로 한 책들은 지금도 '출판'중에 있다.

◆2009년 '큰별'지면서 등장…아류작·폭로도 '불티'
신정아씨는 전통을 자랑하는 출판사 민음사에 먼저 출판을 요청했다. 하지만 민음사는 수차례의 원고 검토 끝에 출판을 거부했다. 흥행은 불 보듯 뻔했지만,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정운찬 전 총리 등 너무 많은 사람들의 '치부'를 일방적으로 기술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씨는 사월의책이라는 출판사를 통해 출판했는데, 실제 신씨의 원고내용 중 삭제된 부분도 많다고 한다.
신씨가 겪은 일들과 그에 대한 묘사는 자신 뿐 아니라 관계자와 그 가족들의 '비극'이었지만, 신씨와 출판사에겐 큰 수익모델이 됐다. 책을 통한 '고백'의 형태지만,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한 '폭로'라는 비판도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 부당 1만 4000원의 책이 20쇄 인쇄돼 약 10만부가 팔렸다. 신씨는 인세를 10%만 받았다고 가정하더라도 약 1억 4000만원을 손에 쥐게 됐다.
독자들의 PICK!
출판업계가 본격적으로 '비극'에 열광하기 시작한 건 2009년 이후부터. 2009년 2월16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09년 5월 2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009년 8월18일 김대중 대통령 서거, 2010년 3월 법정스님 입적 등이 잇따르면서 출판업계는 '큰 별'들에 관한 책들로 크게 움직였다.
하지만 문제는 '아류작'들이 많다는 데 있다. 실제 김수환 추기경, 법정스님과 별로 관계가 없던 인물들도 버젓이 '짜깁기'형태로 책을 출판하면서 소비자들의 불만도 높아졌다. 소설로 이들의 일대기를 재구성한 책들을 '예약판매'를 통해 걸어놓고 흥행몰이에 나서는 출판사들도 많았다.
한 출판사 출판팀장은 "유명인들의 비극이 발생하면 관련한 책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그러나 함량미달의 아류작들이 무분별하게 출판되면서 독자들을 속이는 부작용도 많아졌다"고 밝혔다.
반면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경우 출판권은 출판사 범우사에 있었지만, 사후저작권을 위임받은 모임 '맑고 향기롭게'와 협의해 지난해까지만 책을 출간했다. 입적한지 1년이 된 지난 3월 절판된 책 8만 여권을 공공시설에 기증했고 나머지 30여만권은 폐기됐다.
◆ 유가족 동의 없이 출간...막가는 비극 마케팅
일부 책들은 죽음을 이용한 상술로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다. 2008년 탤런트 고 최진실의 생전 자서전이 유가족의 동의 없이 재출간됐다. '그래, 오늘 하루도 진실하게 살자'는 1998년 초반이 발행된 뒤 수요가 없어 절판된 상태였지만, 고인의 사망 이후 출판사는 새로 제작해 서점에 유통시켰다.
또 머리말의 일부인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어언 10년이 됐다'를 20년으로 바꾸면서, 독자들은 고인이 얼마 전 집필했던 책으로 인식하기도 했다.
최근 고인이 된 송지선 MBC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의 야구 관련 서적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의 봉정식이 고인의 생일에 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죽음을 마케팅에 활용했다'는 눈총도 받았다.
고인과의 '관계'를 언급해 마케팅에 활용한 사례도 있다. 2005년 가수 전인권은 자신의 책 '걱정말아요, 그대'를 출간하면서 사망한 배우 이은주와 남녀 사이로 사랑했다고 주장했다. 이은주와 자신의 관계를 '레옹과 마틸다 같은 사이'라고도 표현했다.
출판시장이 '위축'되면서 업계는 '비극 마케팅'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경우가 많다. 국내 출판시장은 2004년 2조3500억원에서 2010년 2조7200억원으로 약 15%정도 성장하는데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시장은 정체돼 있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출판시장의 규모가 정체된 상태에서 전체 출판 시장의 70%가 학습관련 책"이라며 "출판사의 절반이 일 년에 1종 이상의 책을 내지 못하고 있고, 책 한권에 회사의 운명을 걸 수도 있기 때문에 '비극'을 마케팅에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