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中 보이콧, 日 신조선 사실상 포기…한국 조선업 수혜 분위기
더벨|이 기사는 06월01일(08:42) 자본시장 미디어'머니투데이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서반부의 자원 부국, 노르웨이(Kingdom of Norway)는 지난 1967년부터 2년 마다 선박 박람회를 연다. 세계 3대 조선(造船)업 전시회 중 하나로 꼽히는 노르시핑(Nor-Shipping)이다. 올해로 스물세 번째를 맞은 이 해양 건조물 전시회는 북유럽 바이킹의 후손들이 주최하는 행사로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5월 24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센트럴 역에서 행사가 열리는 동북쪽 행정도시 릴레스트롬(Lillestrøm)을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2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지만 직행열차는 15분 여 만에 도착을 알렸다. 열차표 가격이 1만2000원(60 크로네) 가량으로 한국의 서너 배가 넘는 가격인 걸 빼면 나쁘지 않은 접근성이다.
노르웨이의 값비싼 공공재 가격은 학생이나 여행자들에는 부담을 주지만 내국인들의 1인당 국가총생산(GDP, 8만4000달러)을 고려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트에서는 콜라 한 병을 6000원 안팎에 팔지만 이 복지국가에선 실업자도 200만~300만 원의 수당을 지급받아 일정 수준의 경제 활동이 가능하다.
전 국민이 500만이 안 되는 노르웨이는 세계 5위의 석유 수출국이기도 하다. 석유를 팔아 수천억 달러의 국부펀드를 만들고 이를 통해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를 구축했다. 공공서비스 가격이 비싼 이유다.
제조업의 경우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선조의 기술을 전승해 조선 등에 능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산업 경쟁력을 잃었고, 대신 조선 해양업에 필요한 해운과 선급(船級), 부대 서비스업이 발전해 업력을 잇고 있다.
오전 10시, 노르웨이 무역재단(The Norwegian Trade Fair Foundation)의 주관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릴레스트롬의 무역 전시장 노르게스 배레메스(Norges Varemesse)에 43개국 820여 개 업체가 각각 부스를 차리고 방문객을 맞았다. 행사에 참여한 손님수가 주관 측 계산으로 1만3000여명(3일간 총 3만 여명)에 달했다. 3대 행사라는 실감이 났다.

하지만 올해 노르시핑은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재작년 22회에 비해서도 규모가 크지 않다는 얘기가 들렸다. 세계 조선업계의 떠오르는 스타인 중국 조선사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대거 불참해 관람객이 오히려 더 줄었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노벨상 위원회가 중국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劉曉波, Liu Xiaobo)에게 평화상을 수여하자 중국 국영 조선사 CSSC와 CSIC는 행사를 보이콧 했다.
일본 역시 서북부 대지진의 여파로 활발한 참여가 어려운 듯 보였다. 일본은 신조선보다는 기술력이 있는 조선 기자재 업체를 중심으로 부스를 꾸몄다. 신조 마케팅보다는 노르웨이와 국가 간 기술협력을 증대하는 전략을 세워 관련 거래를 노렸다. 국토교통성 심의관 쿠보다 히데오(Kubota Hideo)는 노르웨이 무역산업부 장관 리케 린드(Rikke Lind)와 이날 해양 분야 공동 기술개발 협약을 맺는 성과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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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안을 비롯한 그리스 등 선주들의 관심은 개막 행사에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노르웨이 선주협회 소속의 요르겐 구톰센(Jørgen Guttormsen) 등 주요 인사들은 '다음 세대의 가치(What's next ?)'라는 화두에서 "어려운 경기 상황 속에서 선주들이 친환경, 고효율 선박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선주들은 조선국으로서 가능성을 검증받고 있는 중국의 변화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일단 발주를 결정하면 저가의 선박 건조와 그에 필요한 금융지원이 패키지로 이뤄진다는 걸 자신들끼리 대화의 화제로 삼았다. 한국이 일본과 마찬가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경쟁력을 잃을 거란 의견도 나왔다.

한국은 이 틈바구니에서 4개 단체를 중심으로 마케팅에 나섰다. 먼저 조선공업협회가 주축이 돼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STX조선해양 등 8개 회원사 중심의 한국관을 꾸며 선주들을 맞았다. 이 행사에 6억여 원을 쏟아 부은 국내 메이저들은 각사의 특화 선박 미니어쳐를 전시해 외형을 과시했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장섭 조선공업협회 부회장은 "한국관은 조선강국의 이미지를 대변하도록 각사의 첨단선박과 LED디스플레이 등으로 최대한 고급스럽게 꾸미는데 집중했다"며 "행사 전시와 한국의 밤 리셉션 등을 통해 한국이 조선에 관한 AtoZ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미지를 선주들에게 각인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조선사 실무자들은 잠재 고객을 부스에서 맞는데 집중했다. 이와 별개로 현지에 도착한 경영진들은 기존 관계가 있는 주요 선주들을 행사장 밖으로 초대해 협상을 진전시켰다.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조선공업협회장 자격으로 25일 저녁에 도착해 26일 400여 명의 내빈이 모인 한국의 밤 행사를 이끌었고,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과 홍경진 STX조선해양 부회장 등도 리셉션에 모습을 보였다.
이들 메이저 조선사 경영진의 동선은 노르웨이 선급사 DNV가 주최하는 사모임에서 두드러졌다. DNV는 선급 용역 수주를 위해 노르시핑 기간 중 여러 번의 비공개 모임을 주최하면서 관계자들의 네트워킹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선주들과 조선사 경영진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고 그 신뢰가 공고해지면 계약관계로 발전하는 식이다. 유럽의 귀족사회 친교문화에 한국 메이저들은 상당히 익숙해졌다.

대형사들과 별개로 한국무역협회와 코트라(KOTRA)가 각각 경남(8개)과 부산(9개)의 조선기자재 기업들을 모아 부스를 구성하고 마케팅에 나섰다. 조선협회의 한국관을 중심으로 주변에 기자재 홍보관을 구성해 산업 클러스터 포멧을 구성한 전략이다. 부산의 수처리 기술기업 테크로스는 박규원 대표가 직접 나서 주요 품목을 선전했다. 해안기계산업과 신흥ENG 등도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대형선박에 탑재되는 구명정 진수장비를 제조하는 경남 김해의 바다중공업은 이번 행사 기간 동안 네덜란드 업체와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및 기술협력 양해각서(MOU) 체결 기회를 잡았다. 회사 측은 계약이 성사되면 연간 20억 원의 매출을 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파이프 연결이음쇠를 제조하는 영남메탈도 덴마크와 노르웨이, 핀란드 업체들과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다. 연간 50만 유로의 수출계약을 따낸 것이다.

전남테크노파크는 대한조선과 세광조선 등 관련 지역의 중소 조선사를 지원해 홍보관을 꾸몄다. 금융위기 이후 조선경기 침체로 사세가 꺾였지만 그 중 생존 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지원해 노르웨이까지 날아왔다.
대한조선은 워크아웃 상태로 출자전환한 산업은행이 매각을 고려중이지만 임원급이 파견돼 수주 가능성을 살폈다. 부스를 찾은 외국 선주들이 "요즘 한국 소형사들 다 어디로 숨었냐"고 묻자 최남덕 세광조선 전무 및 대한조선 실무자들은 표정관리를 하며 "여기 있다"며 "발주하면 품질로 보답하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단체 홍보관과 별개로 중견 조선사인 성동조선해양과 SPP조선은 각각 독립 부스를 차려 경영진이 직접 선주를 맞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홍준 성동조선 회장은 정휘영 전무와 함께 부스에서 직접 선주를 맞았고, 김인동 SPP조선 사장도 경영진과 함께 부지런히 컨퍼런스 등을 찾아 나섰다. 성동과 SPP는 각각 수출입은행과 우리은행의 자율협약 대상으로 재무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경기회복과 함께 최근 자력 회생이 가능한 신조 업체로 평가된다.
노르시핑에서 만난 중소형 조선사 관계자들은 국내 금융권의 지원 부족에 불만을 나타냈다. 은행들이 선수금환급보증(RG)을 무분별하게 줄이면서 경쟁력 있는 회사들의 사정까지 나빠졌고 어렵게 수주한 계약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각 은행 선박금융 담당자들이 산업에 대한 기본적 이해 없이 보신주의적인 업무에 나서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한국 조선은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양극화 경향이 확연했지만 국가 간 비교에서는 비교우위의 모습을 보였다. 국내 대형사들이 서로 출혈을 마다치 않고 경쟁력을 키우면서 일본을 넘어 중국에도 밀리지 않는 가격 경쟁력을 갖췄고, 기술면에서 수익성이 높은 드릴쉽과 부유식원유저장설비(FPSO) 등 고부가가치선에 특화한 것이다.
중소형사들 중에서는 성동 등 일부가 메이저에 근접한 경쟁력을 키우면서 중형 셔틀탱커 등 니치마켓에서 중국 조선사와 직접 경쟁에 나섰다. SPP는 중형(MR) 탱커에 특화하는 전략을 세워 국가의 산업적 포트폴리오를 채우는 모습이었다.

한국은 총 30여 개 사가 행사에 참여했고, 일본은 22개, 중국은 15개가 나섰다. 미국과 싱가포르 등 총 19개 나라가 국가관을 마련했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아시아에, 특히 우리나라에 모아졌다. 한국은 민관이 함께 키운 조선업에서 노련미를 보였다.
이 행사에서 한국 메이저 중 대우조선은 어워즈 분야의 상도 거머쥐었다. 브라질 발레에 인도한 40만톤급 광탄 운반선(VLOC) 발레 브라질호가 노르시핑 어워드 클린십 부문의 수상대상으로 선정됐다. 이 배는 기존 케이프사이즈 벌커에 비해 톤당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3.5%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이런 기술 때문인지 노르웨이 등 선주국들도 본 행사에서는 중국 조선사를 주시한다고 말했지만 실제 계약은 품질이 보증된 국내사에 실행하는 실리주의를 유지했다. 대우조선은 24~26일 노르시핑 기간 중 아빌코(Awilco LNG AS)로부터 15만5900CBM급 LNG선 4척(옵션 포함)을 수주했고, 현대중공업도 이에 앞서 프레드 올센 에너지(Fred Olsen Energy)에 드릴십을 공급하기로 계약하는 등 낭보를 이었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조선은 위기 속에서 각고의 노력과 시운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해양 산업의 또 다른 대형 시장인 선급과 선박금융, 해운 등 서비스 산업의 수준이 조선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노르시핑에는 국내 유일의 선급사인 한국선급(KR)도 참여했다. 하지만 KR의 규모는 영국 선급협회 로이드레지스터(LR)나 노르웨이 DNV 등에 비하면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이제 막 세계진출을 시작하는 단계다. 행사에 참여한 오공균 KR 회장은 "최근 2~3년 만에 KR의 선급 규모가 4600만 톤으로 2배가량 늘어 산업적 성장이 기대된다"며 "노르시핑 참가를 계기로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선급 시장에 진출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그리스 등 선주국은 한국을 가장 경쟁력 있는 생산기지로는 여긴다. 하지만 더 큰 먹을거리가 있는 관련 서비스업에는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진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물론 서비스 시장은 주도권을 쥔 기업들의 역사가 길어 그를 비집고 들어가는데 긴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당장 경쟁이 가능한 풍력 등 제조업 연관 서비스 기술 분야는 국가적으로 지원해 경쟁력 있는 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인구수와 부존자원 등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노르웨이 국민 한 명은 일 년에 8만 달러를 넘게 벌어들인다. 한국의 4배가 넘는다. 그 원동력에는 조선보다 큰 부가가치를 내는 산업들이 있다. 조선업의 적자(適者)로 인정받은 한국이 그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이젠 좀 더 큰 욕심을 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행사장을 떠나오는 길에 머릿속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