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주관사나 자문사를 선정할 때 가장 중시하는 룰이 뭔지 아세요? 바로 'CYA' 입니다." 한 국내 대형증권사 IB(투자은행) 관계자가 '우스갯소리'라는 전제를 달아 한 말이다.
내로라하는 금융전문가들이 모인 IB시장에서 '빅딜'을 따내려면 해박한 금융지식, 치밀한 플랜, 화려한 언변의 프레젠테이션, 승부사적 기질, 협상력 등의 자질이 중요할 것 같은데 생소한 'CYA'라는 단어가 등장해 기자의 귀가 솔깃해졌다.
CYA는 'Cover Your Ass'의 줄임말이란다. CYOA(Cover Your Own Ass)로도 쓰인다. 영어 'Ass'의 뜻을 떠올리면 대략 이해가 된다. 다름 아닌 뒷일을 커버하라는 말이다. 곧 문제가 생길 경우에 대비하고 면피할 구실을 확보하라는 뜻도 된다.
IB업계에서는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해 국내 IB보다는 외국계 IB가 선호되는 현실을 빗댄, 일종의 은어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일이 잘못되더라도 골드만삭스에 맡겼는데도 안됐으니 도리가 없지 않느냐는 구실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CYA'는 각종 빅딜을 외국계가 주도하는 상황을 비꼰 자조섞인 진단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실력에서는 뒤지지 않을 정도로 국내 IB도 성장했는데 무조건 외국계만 찾는 풍토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초대형 M&A'인 '빅딜'이 추진될 때는 늘 외국계가 득세했다. 그 과정에서 수십 배의 시세차익과 막대한 자금이 외국계로 흘러들어가기도 했다. 최근 롯데가 웅진코웨이 인수 자문사로 외국계가 아닌 국내 증권사를 선정한 것을 두고 롯데의 인수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정도로 '빅딜'에서 국내 IB하우스는 여전히 '찬밥' 신세다.
'삼성'의 글로벌 브랜드파워가 세졌는데도 삼성증권이 홍콩사업을 조기 철수할 정도로 외국계와의 경쟁은 버겁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IB와 외국계 IB의 싸움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과 국내 FC서울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의 싸움에 빗댈 수 있을 것"이라며 "금융업에서 외국계와 경쟁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다. 같은 선수라도 팀의 위상, 운영 노하우 등 '팀플레이' 면에서 한참 열세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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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국내 무대에서라도 기업들이 토종 IB에 기회를 줘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기업들이 스스로 국내 IB업계에 '유리천장'을 쌓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금융선진화, 금융강국은 구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