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유화학업계가 올해 상반기 신용등급 회복에 사실상 전면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황 부진이 이어지면서 등급이 상향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전날 발표한 물적분할·통합법인 설립 등 석유화학사업 재편안이 기업들의 조달금리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3일 신용평가업계와 하나증권 분석을 종합하면 올해 상반기 정기평정에서 14개 주요 석유화학기업 가운데 유효등급이 상향된 곳은 하나도 없었다. 유효등급이란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의 등급 중 시장 거래에 실제 적용되는 등급을 말한다. 통상 가장 낮은 등급이 적용돼, 회사채 발행과 매매 시 금리 산출의 기준이 된다.
등급 강등도 잇따랐다. LG화학(271,500원 ▲19,500 +7.74%)이 지난해 말 AA+에서 올해 상반기 AA로 등급이 내려갔다. 여천NCC도 A-에서 BBB+로, SK어드밴스드는 BBB+에서 BBB로 내려왔다. 롯데케미칼(62,800원 ▲3,600 +6.08%)은 등급(AA-)을 유지했으나 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됐다.
나머지 기업들은 등급과 전망이 모두 유지됐다. 한화토탈에너지스·SK지오센트릭·한화솔루션(30,000원 ▲2,850 +10.5%)이 AA-에 '부정적' 전망을, 금호석유화학(125,100원 ▲7,400 +6.29%)·SK케미칼(40,800원 ▲3,200 +8.51%)·국도화학(39,450원 ▲2,200 +5.91%)이 A+에 '안정적' 전망이 이어졌다.
SKC(87,800원 ▲8,100 +10.16%)와 금호피앤비화학은 A(안정적), HD현대케미칼은 A(부정적), 에스케이피아이씨글로벌은 A-(부정적)를 유지했다. 문제는 등급을 지킨 기업 중에도 5개사는 전망 자체가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등급이 실제로 강등된 3개사와 전망이 하향된 1개사를 더하면, 이미 하향됐거나 하향 가능성이 예고된 기업이 총 9개사에 달한다.
등급 하향이 집중된 배경에는 저가 석유화학제품 공세에 나선 중국 등과 비교해 불리한 원료 수급구조가 있었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제조 원가 우위를 지닌 미국·중국·중동 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평가돼 왔다. 국내 업체들은 플라스틱과 비닐, 합성수지 등의 기초 원료가 되는 에틸렌을 생산할 때 나프타(원유 정제 과정의 중간 산물)를 고온에서 분해하는 설비(NCC·나프타분해시설)를 사용한다.

반면 미국은 셰일가스에서 나오는 값싼 에탄가스(천연가스에서 분리되는 성분)를 분해하는 설비(ECC·에탄크래커)를 통해 에틸렌을 생산한다. 중동은 산유국인 데다 저가 에탄 설비도 갖추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풍부한 석탄을 원료로 쓰는 석탄크래커(CTO)를 늘려 에틸렌을 생산한다. 특히 중국은 대규모 증설과 저가 수출로 한국 업체를 압박하는 핵심 경쟁국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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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위기감 속에 정부도 움직였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2일 여천NCC·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DL케미칼이 참여하는 여수 1호 사업재편 프로젝트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발표된 대산 1호 프로젝트에 이은 두 번째 석유화학 사업재편이다. 이번 승인에 따라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폴리에틸렌(PE) 등 다운스트림 사업(후방공정사업)을 현물출자하고, 롯데케미칼은 여수공장 NCC와 기초소재 사업을 물적분할해 여천NCC와 통합법인을 설립한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은 총 5450억원을 출자해 여천NCC의 시장성 차입금 상환 재원을 마련할 예정이다. 정부도 최대 4500억원의 신규 자금 지원과 협약채무 상환 유예, 세제 지원 등을 추진한다. 한국은행이 이달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연내 추가 인상을 시사하면서 적자 기업들의 조달비용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다만 이번 재편에는 유상증자를 통한 시장성 차입금 상환과 상환 유예 등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금리 상승 국면에서도 추가 조달비용 부담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료 수급에서는 불리한 여건이 이어지는 만큼 근본적 경쟁력을 되살릴지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번 구조개편은 손실 규모를 줄이는 데에는 의미가 있으나 근본적으로 원가구조 자체를 바꾸거나 구조적 경쟁열위를 해소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