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자문사의 찬반 권고와 대형 기관투자자의 실제 표결이 엇갈리는 사례가 잇따른다. 자문사의 권고가 기관 행보를 사실상 좌우한다는 통념과는 다른 현상이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9일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에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기관투자자서비스)와 글래스루이스 등 국내외 자문사 9곳 가운데 8곳은 회사 측 백인규 감사위원 후보를 지지했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캘퍼스·CalPERS)과 노르웨이 중앙은행 투자관리청(NBIM)은 영풍·MBK파트너스 측 후보에 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은 양측 후보 모두 찬성했다. 자문사 다수 의견과 주요 연기금의 실제 선택이 한 방향으로 모이지 않은 것이다.
지난 3월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찬성을 권고했지만 최대주주 국민연금은 반대했다.
국민연금은 당시 진 회장과 관련된 기업가치 훼손이나 주주권익 침해 이력 등을 이유로 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진 회장은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주의적 경고'라는 경징계를 받았다.
같은 달 LG화학에서는 행동주의펀드 팰리서캐피탈이 제안한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에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찬성했고 선임독립이사 선임 안건에는 ISS가 찬성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두 안건 모두 반대했다.
기관투자자가 자문사와 다른 표를 던질 수 있는 것은 의결권 행사 권한이 원칙상 각 기관에 귀속돼 있기 때문이다. 자문사는 이사 선임과 주주제안 등 주총 안건에 대한 찬반 의견을 밝히고 기관투자자는 자체 의결권 기준과 내부 심의 절차를 거쳐 최종 표를 결정한다. 기업가치 훼손 여부나 이사의 적격성 등 판단 기준도 기관별로 다르다.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가 9일 서울 용산 몬드리안호텔에서 열린 제53기 임시주주총회에 참석해 개회를 알리고 있다. (공동취재) 2026.09.09. photo@newsis.com /사진=](https://thumb.mt.co.kr/cdn-cgi/image/f=avif/21/2026/09/2026091015545082049_2.jpg)
외부 자문사를 아예 이용하지 않는 대형 운용사도 등장했다. JP모간자산운용은 올해 미국 상장사 의결권 행사에서 ISS와 글래스루이스의 권고를 이용하지 않기로 하고 자체 AI(인공지능) 시스템 '프록시 아이큐(Proxy IQ)'를 도입했다. 3000개가 넘는 미국 기업의 주총 자료 등을 분석해 내부 운용역의 의결권 판단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자문사 권고를 이용하지 않는 대형 운용사가 나오고 미국 정부가 자문사 규제에 나서면서 권고와 기관 표의 거리는 더 벌어질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자문사 규제 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미국 의결권 자문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제안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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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4일 ISS가 의결권 권고와 고객 투표 관련 일부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며 소환장 이행을 강제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IB(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는 "대형 기관의 표를 미리 가늠하기 어려워질수록 경영권 분쟁이나 합병 안건을 앞둔 기업은 자문사뿐 아니라 개별 기관을 직접 설득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