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만에 출시된 라인 '홈런' 날린 환상의 라인업

3개월만에 출시된 라인 '홈런' 날린 환상의 라인업

최광 기자
2014.03.19 05:58

[네이버의 승부수 세계무대에 선 라인]이해진·신중호·모리카와 아키라···드림팀은 있었다

[편집자주] 네이버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전 세계 가입자가 3억7000만명을 돌파했다. 네이버 주가는 고공행진을 하며 기업가치를 30조원까지 끌어올렸다. 라인은 일본을 거점으로 동남아와 중남미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사업모델도 스티커(이모티콘), 게임에서 연관 앱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Beyond Line'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차세대 라인을 이끌 3가지 사업모델을 발표했다. 한국 시장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번번이 글로벌 무대에서 쓴잔을 마셨던 한국 인터넷 기업에게 라인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벤치마킹 해야 할 모델이 됐다. 하지만 라인이 처한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다. 페이스북에 190억 달러에 인수된 왓츠앱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중국 텐센트 위챗의 협공 속에서 변신을 시도해야 하기 때문. 네이버를 재조명하게 한 라인의 성공 포인트는 어디에 있을까. 한국의 핵심 기술진과 네이버의 일본법인이 합작해 성공가도를 달리게 한 라인의 성공 비결을 살펴본다. 게임사업 분사(NHN엔터테인먼트) 후 제 2창업기를 맞은 네이버의 글로벌 성공은 한국 인터넷 산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일이다.

1. 모바일 바다에 한국 기업 깃발 꽂다

2. 2등 메신저 등극한 라인, 메신저 대전 이제부터

3. 라인을 만든 사람들, 접근법이 달랐다

4. 게임에서 광고로 확대되는 라인 월드

5. 'BEYOND LINE' 라인 생태계를 구축하라

라인이 대 성공을 거둔 데에는 시간적으로 절묘한 타이밍과 라인의 사업모델도 있지만, 그 속에는 라인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공로가 숨어있다.

네이버는 한국에서 성공한 서비스를 단지 언어만 바꾸어 내놓는 수준으로 일본 시장 진출을 거듭하다 두번의 쓴 맛을 봐야했다. 하지만 라인은 전혀 반대 방향에서 출발했다.

당초 라인은 개방형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 형태로 검토됐다.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상처를 안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지인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서비스로 전환하자는 발상으로 확 바뀌었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 발생 이후 6월23일 라인이 나오기까지 걸린 기간은 3달 남짓. 지진의 여파가 계속되던 4월 말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지금의 라인이 기획됐다.

이 기간 동안 라인 개발진은 기존에 해오던 방향을 전면 수정하고 전력 질주했다. 라인의 출시가 조금만 늦었으면 위챗이나 카카오톡에 시장을 선점당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런 의사결정은 모두 이해진 라인 회장이자 네이버 의장이 내렸다. 이 의장의 결단을 뒷받침한 것은 다년간의 일본 검색 시장을 경험으로 한 신중호 라인플러스 대표와 첫눈 출신 개발자들의 개발력, 그리고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어낸 모리카와 아키라 라인 대표의 경영철학이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 은둔? 이해진 의장, 라인사업 진두지휘하다

이해진 의장은 기업가들 사이에서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외부 활동은 자제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지만 실은 네이버의 중요한 사업방향을 결정하는 데 매진해 온데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보는 분석이 맞다. 일본 시장에 본격적인 검색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 네이버재팬을 설립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네이버의 일본 진출은 이 의장의 결정이었다.

이 의장은 2012년 1월 당시 NHN의 최고전략책임자(CSO)직을 사임하며 2011년 6월 서비스를 선보인 라인의 일본 시장 안착에 공을 들였다. 이 시기에 이 의장은 네이버 내부에 위기의식을 강조하며 "벤처 초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문했다. 네이버 내부에는 위기의식을 강조하면서 일본에서는 라인 사업을 직접 챙긴 것. 이 의장은 지난 5년간 일본에서 머문 기간과 한국에서 머문 기간이 비슷할 정도로 일본 시장 공략에 집중했다.

2012년부터 라인(당시 NHN재팬) 회장직을 맡으며 라인 사업을 직접 관장하고 있다. 당초 라인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처럼 공개형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형태로 개발이 진행 중이었다. 공개형 SNS를 지인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바꾼 계기는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로 통신이 끊기며 친구나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을 보고 이 의장은 "소중한 사람을 '핫라인'으로 이어주는 서비스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며 라인의 방향을 지인간 폐쇄형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전환했다.

라인은 지인간의 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면서 통신요금이 비싼 일본 시장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라인은 서비스 출시 1년 1개월 만에 5000만명을 돌파한 이후 6개월 후인 2013년 1월 1억명을 돌파했다. 2억명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6개월, 3억명을 돌파하는 데 걸린 시간은 4개월에 불과할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 의장은 지난해 라인 이용자가 3억명을 돌파한 것을 기념해 일본 라인 본사에서 열린 기념식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은둔의 경영자가 12년 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이 의장은 "지난 5년간 일본 사업이 잘 안돼서 나서질 못했다"며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는 마음으로 지냈다"고 말했다.

3억 돌파의 의미에 대해 이 의장은 "지금의 성공을 거둔 것에 감사하지만, 쉽지 않은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스트레스도 크다"며 "텐센트, 페이스북 등 대기업이 대규모 자금으로 시장에 진입하고 있어 어떻게 싸워야 할지 두렵다"고 말했다.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밖으로 자랑하는 자리기도 했지만, 내부에 라인의 변신을 주문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의장은 이제 라인 이후를 고민하고 있다. 진정한 세계 1등 서비스로 라인을 성장시키는 것이 이의장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숙제다.

신중호 라인플러스 대표
신중호 라인플러스 대표

◇ 네이버의 첫눈 인수 빛났다! 신중호 라인플러스 대표와 개발팀

네이버는 지난 2006년 신생 검색 서비스 기업 '첫눈'을 350억원을 들여 인수했다.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가 네오위즈에서 독립해 설립한 검색 서비스를 350억원이나 주고 사들인 이유를 두고 '경쟁서비스를 제거하기 위한 지출'로 해석하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해진 의장이 첫눈을 인수한 이유는 네이버의 글로벌 진출과 첫눈의 멤버들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이 의장의 말은 이제 현실로 증명됐다.

라인 개발의 주역인 신중호 라인플러스 대표가 바로 첫눈 CTO였다. 신대표는 카이스트를 졸업한 후 네오위즈 검색팀장, 첫눈 CTO를 거치면서 포털에 속하지 않는 검색 고수로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실제 신대표를 비롯한 첫눈 멤버들은 일본 검색시장 재진출을 위해 일본으로 대거 파견됐다.

2007년에는 네이버재팬이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했고, 2009년부터 일본에서 네이버 서비스를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야후재판과 구글의 벽에 막혀 네이버재팬은 군소포털이라는 불명예를 떠안아야 했고, 네이버의 일본 진출은 또다시 좌절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아이폰의 등장이 모든 상황을 바꾸어 놓았다. 모바일로 빠르게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상황이 네이버의 해외 진출에 유일한 기회라고 판단한 이의장과 신대표는 네이버 서비스 대신, 전혀 새로운 시장에 문을 두드렸다.

신 대표를 필두로 한 라인 개발진은 모바일 시장에서 무엇이 핵심이 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용자의 요구를 먼저 조사하고 초기 버전을 만들어 테스트를 거치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실제 오픈된 서비스보다 10배가 많은 프로젝트들이 개발 중 중단되는 일이 반복됐다.

무엇보다 지속된 부진으로 인한 인력이탈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신 대표는 "라인의 성공 이전까지 수십명뿐이 안 되는 사람들이 수십 개의 프로젝트를 만들고 뒤엎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과연 우리가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내부적으로 컸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일본 개발자와 손발을 맞추며 메신저 기능 외에도 일본 시장에서 통할만한 '매력적인 상품' 즉 스티커를 라인에 접목시켰다. 일본 이용자의 반응은 뜨거웠고, 곧 동남아시아와 유럽, 남미로 라인의 인기가 번져갔다.

신 대표는 이제 라인의 글로벌 사업을 담당하는 라인플러스대표로 라인을 후방지원하고 있다.

모리카와 아키라 대표
모리카와 아키라 대표

◇ 기획서 없는 조직문화, 모리카와 아키라 라인 대표 작품

모리카와 아키라 라인 대표는 시스템 엔지니어에서 시작해 글로벌 메신저 사업을 이끄는 경영자로 변신한 인물이다.

모리키와 대표는 일본 츠쿠바대학 출신의 시스템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니혼TV에서 방송 관련 솔루션을 개발하던 그는 1999년 MBA에 도전해 아오야마가쿠인대학 대학원에서 국제정치경제학연구과 석사과정 졸업, MBA 취득했다. 이후 소니와 토요타를 거쳐 2003년 네이버와 인연을 맺는다. 니혼TV에서는 선거방송 방송 시스템 개편 등의 작업을 담당했고, 소니와 도요타에서는 광대역 콘텐츠 유통 기업 벤처All에서 단말기와 시스템을 연결하는 사업 등을 진행했다.

순전히 인터넷만 하는 사업에 도전하고 싶었던 모리카와 대표는 당시에는 일본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NHN재팬에 문을 두드린다. 당시 NHN재팬 게임사업부에 입사한 모리카와 대표는 2006년 부사장에 임명됐고, 2007년 천양현 코코네 회장(당시 NHN재팬 대표)가 회장으로 한발 물러난 후 대표에 취임해 지금까지 네이버의 일본 살림을 도맡아 해오고 있다.

2007년 설립된 네이버재팬의 대표도 맡아 라인 개발의 총책임을 맡았다. 모리카와 대표는 네이버에서 개발자라기보다는 경영자로 성장해 온 인물. 라인에서도 개발보다는 마케팅이나 제휴 등 대외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라인에 일본 고유의 색상을 입히는 데는 모리카와 대표의 역할이 결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카카오톡은 전화도 안 터지는 곳에서 사람들의 안부를 전하는 유용한 소통수단으로 사람들에게 모바일 메신저의 필요성을 증명했다. 모리카와 대표는 여기에 일본 특유의 'i모드' 문화를 스마트폰에 접목시켰다. i모드는 일반 피쳐폰에서 e메일을 송수신 할 수 있도록 NTT도코모가 만든 서비스로 일본의 모바일 메일 문화의 선구라고 할 수 있다.

모리카와 대표는 기존 문자 메시지 외에도 이모티콘, 캐릭터 스티커 등 일본풍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라인에 접목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스마트폰 보급이 더딘 일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피쳐폰에서도 라인 이용이 가능한 서비스 개발에도 관여했다. 그 결과 라인은 일본인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로 일본 이용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왓츠앱이나 카카오톡과 같은 선행 메신저를 제치고 일본 시장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모리카와 대표의 경영스타일은 '스펙을 만들지 않는다'로 요약된다. 여러 차례 번복됐던 라인이 방향을 잡은 후 개발에 걸린 시간은 불과 한 달반. 기획회의도 없고 기획서도 만들지 않는 라인의 기업문화가 뒷받침 된 결과다. 미리 스펙을 정한 후 이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소수의 팀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이를 발전시켜 간다는 것이다.

개발자가 아닌 경영자로 라인을 총괄하지만, 모리카와 대표가 만들어낸 라인의 기업문화는 '라인이 세계시장에서 빠른 적응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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