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사무실, 전 세계에 흩어져서 만드는 ‘팬시’의 클라우드 아키텍트 김승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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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팀일까요? 기존의 틀을 깨야 합니다.”
각광받고 있는 미국의 소셜커머스 사이트 ‘팬시(www.thefancy.com)’의 클라우드 아키텍트인 김승진 씨를 2014년 12월 12일 서울 역삼동 아산나눔재단 창업보육센터 ‘마루180’에서 만났다. 김승진 씨는 팬시 사이트를 운영하는 미국 기업인 씽데몬의 개발부서에 한국인이 많고, 이들이 주로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기자가 어떻게 팀을 꾸려 시스템 개발과 운영을 하느냐고 질문하자 이렇게 되물었다.
씽데몬의 서버, 클라우드 등 인프라스트럭처의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김승진 씨 역시 한국에서 원격근무 형태로 일하다 최근 중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국에 있을 때도 일부러 여러 지역에서 살아봤다는 김승진 씨가 중국으로 옮긴 것은 업무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승진 씨는 기자와 만나기 전날 미래창조과학부와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주최한 소프트웨어(SW) 산업전망 컨퍼런스에서 ‘디지털노마드 시대의 SW 개발’을 주제로 발표를 했다. 이 발표는 ‘풀타임 풀 리모트(Full time - Full remote) 포지션으로 서울, 부산, 중국, 미국을 오가며 사는 개발자의 삶은 어떨까’라는 부제가 붙었다.
모든 개발자가 원격에서 자율근무
씽데몬이 운영하는 팬시는 이미지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핀터레스트를 온라인거래 영역으로 확장한 사이트로, 핀터레스트에 판매와 구매를 덧붙였다. 팬시는 다양한 아이템을 소셜사이트에 이미지 형태로 공유하고 맘에 들 경우 이를 클릭해 바로 구매할 수 있으며, 매출의 10%를 수수료로 받는 것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고 있다. 팬시는 2012년에 애플이 인수협상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씽데몬의 개발 방식이 관심을 끄는 것은 우선 모든 구성원이 한 각자의 거주지에서 원격근무를 한다는 점이다.미국 뉴욕에 위치한 씽데몬은 개발자 등 직원들이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이 같은 생각은 점차 영역을 넓혀 씽데몬의 개발자들은 미국, 한국, 유럽에 흩어져 일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대부분 한국인이 개발자로 근무하고 있다.
김승진 씨는 이에 대해 “초창기에 비해 한국인 직원들이 3~4배 정도 늘었다”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한국 사람들이 그만큼 일을 잘하고 그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씽데몬의 개발자들은 같은 곳에서 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별히 정형화된 조직체계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상황에 따라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액체로봇처럼 자유롭게 모습을 바꾸는 것이다.
개발자들이 팀을 이루고 같은 공간에서 리더의 지휘
아래 개발과 운영을 수행하는 프로세스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데, 이는 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이다. 그렇다고 씽데몬이 타 회사에는 없는 독특한 협업도구를 쓰거나 특별한 시스템을 갖고 있지도 않다고 한다. 그저 일반적인 협업도구와 메신저 등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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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처럼 느슨한 체계로 시스템을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을까?김승진 씨는 그 이유로 개발자들의 프로의식, 그리고 서로에 대한 높은 수준의 신뢰를 꼽았다. 씽데몬에 합류한 개발자들은 SW 개발 관련 전문서적을 발간하거나 유명 개발 동호회 운영자로 활동하는 등 이른바 ‘선수들’로, 이들은 업무가 부여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을 찾아 처리한다고 한다. 씽데몬 개발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제가 할게요”라고 한다. 이러한 구성원들의 실력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있다.

또 씽데몬의 개발자들은 자신의 주력분야가 있지만, 각자의 업무영역이 엄격하게 구분돼 있지 않다고 한다. 처리해야 할 과제가 주어지면 통상 해당 업무를 주로 해온 개발자가 나서지만, 상황에 따라 수시로 업무를 대체하기도 한다.
이처럼 씽데몬 개발진이 자유자재로 업무를 바꿀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개발자들이 여러 영역에 걸쳐 전문지식을 갖고 있어 이른바 멀티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여기에 쉽고 생산성이 높은 언어를 사용해 간결, 명료하고 재치있게 기술코드를 만들어 놓은 것도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이 같은 바탕에서 씽데몬은 서로 떨어져 있고 정형화된 팀을 꾸리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일을 문제없이 처리하고 협업을 수행한다.
하지만 자신의 영역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은 없을까?
김승진 씨는 “(씽데몬 개발자들은) 이른바 ‘개발자의 아집’이 없다”며 “자신의 일을 남이 침범했다고 화를 내는 경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별다르게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씽데몬의 개발자들은 또 비즈니스와 철저하게 분리돼 있다고 한다.
김승진 씨는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알 필요도 없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며 “비즈니스가 제대로 안되면 투자자가 가만있지 않을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이는 개발파트가 비즈니스를 알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우리나라 기업과는 다른 모습이다.

“출근 안하면 교통지옥, 집값 걱정 없을 것”
김승진 씨는 또 “한국 기업은 리더가 강력한 리더십을 갖추고, 직원들에게 열정과 비전을 심어줘야 하며,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등을 통해 작업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씽데몬에서 일하면서) 그런 것이 다 필요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도 씽데몬 같은 기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김승진 씨는 “(모든 구성원이 원격근무를 하면) 교통지옥이 없어지고, 대출 받아 (SW 개발회사가 많은) 판교에 집을 살 필요가 없으며 아빠가 (일찍 일을 마치고) 애들을 데리러 갈 수도 있다”며 “한국도 씽데몬 같은 회사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강동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