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자살 줄어든 대한민국, 희망 이어가려면(上)

최근 자살 사망자 수가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범정부 차원의 자살 예방 대책, 각종 정부 지원금, 유명인의 자살이 부각되지 않았던 점, 주식 시장 호황 등이 최근 자살 감소 요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올 상반기 한강 다리 위에 설치된 'SOS생명의전화' 상담 수는 전년보다 20% 증가하면서 자살 고위험자 수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주가 폭락은 또 다른 자살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전문가들은 선제적이고 실효성 있는 자살 예방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 8개월 연속 자살 사망자 수 감소…'베르테르 효과' 감소, 경제상황 개선, 정부 정책 등이 원인
8일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잠정치 기준 지난 5월 자살 사망자 수가 1071명으로 전년 동기 10.8% 감소했다. 월별 자살 사망자 수의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는 지난해 10월부터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연간 자살 사망자 수는 지난해 1만3900명으로 전년 1만4872명 대비 6.5% 줄었다. 3년 만의 감소다.
전문가들은 눈에 띄는 유명인 자살이 없던 점, 정부 정책, 경기 상황 개선 등을 최근 자살 감소세의 원인으로 본다. 백종우 한국자살예방협회장(국민생명안전위원회 부위원장,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2024년 유명 연예인의 자살을 모방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높게 나타났는데 다행히 올해는 파급력 있는 유명인 자살이 없었던 게 첫 번째 원인으로 추정된다"며 "올해는 우리 경제가 괜찮았고, 정부가 자살 예방 대책을 발표하며 관련 인식 변화가 생긴 점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준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2년 전 대비 회복세인 경기 수준, 주가 상승, 자살 예방에 대한 국가적 관심 등이 자살률 감소 원인 같다"며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분은 몇 만원이 없어 힘들어하시기 때문에 민생지원금, 고유가지원금 같은 정책도 자살 감소에 긍정적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 올 상반기 'SOS생명의전화' 상담 20% 증가, 위험 신호…"국민 체감 대책 만들어야"
다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한강 다리 위에서 자살을 고민하는 고위험군 상담 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한강 대교 위 'SOS생명의전화'를 운영하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 따르면 올 상반기 SOS생명의전화 상담 건수가 188건으로 전년 동기 157건 대비 20% 증가했다. 2023년 213건 대비 지난해까지 감소했지만 올해 다시 증가한 것이다. 재단 측은 "자살 위험도가 높은 한강 교량에서의 상담이 늘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지영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본부장은 "상담 전화를 받아 보면 30~4대는 관계나 경제적인 게 가장 큰데, 최근 주가가 폭락하고 '빚투'(빚내서 투자) 투자자들이 많아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지속적으로 자살 사망자 수가 계속 줄어드는 경향이 될지 지켜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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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순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정부의 정책 강화와 사회·경제적 여건 개선, 지방자치단체, 의료계, 경찰·소방, 민간단체 등 지역사회 다기관 협력이 축적됐고, 국민의 정신건강 인식 개선으로 상담과 치료의 문턱이 낮아진 점이 자살 감소세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도 "현재의 감소세를 성급히 낙관해서는 안 된다. 자살 위험은 외부 환경에 따라 언제든 반등할 수 있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자살 예방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경기 광주의 한 병원에서 20대 간호사가 이른바 '태움'(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구조적·환경적으로 개인이 해결하기 힘든 만큼 조직과 정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2020∼2022년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가 19∼65세 직장인 1만2541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과 자살 생각 및 시도에 미치는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괴롭힘이 빈번했다'고 응답한 그룹은 '없다'고 응답한 그룹보다 자살 생각이 1.81배, 자살 시도가 4.43배 높았다.
특히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충동이나 자살 생각은 우울증 유무와 상관없이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직장 내 괴롭힘 자체만으로도 자살 위험에 큰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모든 괴롭힘은 위험하지만 특히 '직장 내' 괴롭힘은 당사자를 절망의 늪에 빠트리고 극단의 상황까지 몰고 간다. 조철현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크게 3가지 이유를 꼽았다. 첫째, 가해자가 평가와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 비대칭 구조라 저항 자체가 불이익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생계가 걸려 있어 스트레스 상황을 쉽게 회피하기 어렵고, 매일같이 반복 노출되며 만성 스트레스와 무력감·무망감을 키우기 쉽다.
마지막은 개인을 넘어 조직적 무관심이 더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조 교수는 "동료 등이 괴롭힘을 목격하고도 개입하지 않을 때 피해자는 '이곳에서 나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른다"며 "학교폭력과 달리 졸업이라는 출구가 없다는 점은 직장 내 괴롭힘의 가장 위험한 특징"이라 강조했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는 먼저 자신을 책망한다. 스트레스 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운데 '마음가짐을 바꿔 이겨내라'는 조언은 오히려 부담을 키운다. 개인의 의지에 맡기다가 '내가 약해서'라는 자책을 키우고 결국 자살로 내몰리게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피해자의 '숨길'을 터주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 교수는 "신고 창구든 인사이동이든 병가든, 지금 상황이 영구적이지 않고 숨 쉴 틈이 있고, 탈출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진료실에서 처음 하는 작업도 대개 '당신의 불면과 우울은 당신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 환경에 노출된 결과'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라며 "문제의 원인이 자신을 향하는 것에서 외부를 바라보게 되면, 그때부터 문제를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필요한 도움 요청을 검토하고 휴직을 결정하는 현실적 판단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피해자에게 생각을 바꾸거나 더 강해지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장기간 괴롭힘을 당하면 자신이 무능하거나 잘못했다는 생각이 강화되고, 판단력과 도움을 요청할 힘도 약해질 수 있다"며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주변에서 피해 사실을 믿어주고 가해 상황으로부터 물리적·업무적으로 분리하며, 상담과 치료·법률·노무 지원으로 연결하는 것"이라 덧붙였다.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의 회복 의지만큼 조직의 대응이 중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에서 구제된 사례가 있고, 도움을 요청할 때 응답받은 경험이 조직 분위기를 만들고 결국 자살 위험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괴롭힘의 원인과 책임을 개인이 아닌 조직에 물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조 교수는 "특히 의료 영역처럼 위계가 강하고 인력이 부족한 업종은 개인 윤리가 아니라 구조적인 인력 배치와 교육 문제로 접근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도 "근무 분리와 부서 이동, 노무·법률상담처럼 조직이 피해자에게 현실적인 보호조치를 해줘야 한다"며 "교육 담당자의 자격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정기적인 익명의 조직문화 조사, 고위험 부서에 대한 정기 점검 등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병원 방문은 선택 아닌 필수로, 가급적 빨리 찾는 게 바람직하다. 이 교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나 잠을 거의 못 자고 출근 자체가 두려운 상태라면 혼자 견디지 말고 즉시 정신건강 전문가나 주변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이를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병원 방문은 마지막 선택지가 아니다"며 "위험 상황을 견딜 '정신 체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앞당겨 생각해 달라"고 조언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