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EU(유럽연합)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인하 요구에 '디지털 규제 우선 완화'를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EU는 디지털 규제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며 이를 거부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가진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EU와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협상과 관련해 EU 측에 디지털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은 "우리는 (EU와) 그들의 기술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고, 그 대가로 멋진 철강·알루미늄 합의를 마련할 것"이라며 EU산 철강·알루미늄 관세 인하는 EU의 디지털 규제 완화 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그들(EU)이 이 규제 프레임워크에서 한발 물러서 우리 기업들에 더 매력적인 환경을 조성한다면, 그들은 수천억 달러 어쩌면 1조 달러에 달하는 투자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미해결 상태인 사건들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라며 EU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에 부과한 벌금 관련 법적 분쟁을 해결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은 그간 EU가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 등을 통해 구글, 아마존 등 미국 기술 대기업을 불공정하게 대우한다고 지적해 왔다. EU는 최근 애플과 메타플랫폼이 디지털시장법을 위반했다며 각각 5억유로(약 8500억3500만원), 2억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구글에는 검색엔진 시장 독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사업에서의 불공정 행위 등을 이유로 41억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의 이런 조치에 추가 관세 위협으로 대응했다.

미국의 이런 요구에 EU 측은 거부 입장을 밝혔다. 테레사 리베라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성명에서 "유럽의 디지털 규정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 대상이 아니다. 우리 유럽인들은 공정한 시장을 보장하고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유럽의 디지털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 관련 규정을 채택했다"고 철강·알루미늄 관세 인하를 위한 디지털 규정 완화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 담당 집행위원은 "EU의 디지털 규정은 차별이지 않고, 미국 기업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이 미국이 논의하고자 하는 이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러트닉 장관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함께 이날 브뤼셀에서 EU 통상 장관들과 만나 철강·알루미늄 등 관세 문제를 논의했다. 이번 회담은 지난 7월 미국과 EU 간 관세 협상 타결 이후 이뤄진 첫 고위급 회동이다. 미국은 당시 합의로 EU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15%로 낮추고, 항공기와 부품, 복제약, 반도체 제조 장비 등 일부 품목 관세는 면제했다. 하지만 인하된 관세율이 트럼프 2기 출범 이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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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EU의 무역 합의 시행에는 EU 의회와 회원국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부 회원국이 자국 주력 수출품의 면세 대상 추가와 철강·알루미늄 50% 관세 인하를 요구하며 합의 승인을 지연시키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EU 내부에선 합의 시행이 내년 3~4월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EU 외교관들은 합의 시행 전 미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