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산업 슈퍼사이클은 이미 시작됐다"

"아시아 산업 슈퍼사이클은 이미 시작됐다"

김세훈 BCC Global 한국·동남아시아 대표
2026.07.02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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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랫폼 전문가 칼럼] 김세훈 BCC Global 한국·동남아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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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훈 BCC Global 한국·동남아시아 대표 /사진=이기범
김세훈 BCC Global 한국·동남아시아 대표 /사진=이기범

지난 30여 년 동안 아시아는 '세계의 공장'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표현만으로는 오늘날의 아시아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오늘날 아시아는 산업혁신과 첨단 제조, 인프라 투자, 기술 혁신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기차(EV),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신재생에너지에 이르기까지 미래 산업을 이끄는 핵심 분야 대부분이 아시아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제 세계 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무대는 아시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이 던져야 할 질문도 달라졌다. 더 이상 '아시아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생태계로 성장한 아시아에서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가 핵심 과제가 됐다.

수치는 이러한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세계 최대 인구를 보유한 인도는 약 14억3000만 명의 인구와 국내총생산(GDP) 4조 달러(약 6000조원) 규모의 경제를 갖추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약 2억8500만 명의 인구와 1조7000억 달러(약 2550조원) 수준의 경제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베트남은 글로벌 제조업 이전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했으며, 태국은 동남아 최대 자동차 생산기지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말레이시아는 반도체와 물류 허브로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고, 필리핀은 젊은 인구 구조를 기반으로 서비스 산업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 시장을 합치면 인구는 20억 명을 넘어선다. 경제 규모 역시 8조 달러(약 1경2000조원)를 웃돈다. 무엇보다 이 지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제조업과 소비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부상은 단순히 인구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십 년에 걸친 산업정책과 제도 구축, 그리고 장기적인 국가 전략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Lee Kuan Yew) 전 총리다. 싱가포르는 독립 당시 천연자원도, 내수시장도, 지정학적 우위도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리콴유는 법치주의와 교육, 외국인 투자 유치, 철저한 정책 실행력을 바탕으로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금융·물류·첨단 제조 중심지로 탈바꿈시켰다.

30여 년 동안 싱가포르는 연평균 8~9%의 경제성장을 기록했고, 1인당 GDP는 30배 이상 증가했다. 리콴유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단순한 경제성장이 아니었다. 글로벌 기업들이 수십 년 후까지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신뢰의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 그의 진정한 업적이었다. 오늘날 아시아의 성장 방식 역시 이러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향후 10년의 성장 동력은 소비보다 산업 투자에서 나올 가능성이 훨씬 크다. 세계 전기차 시장 규모는 1조 달러(약 15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중국은 전 세계 전기차 판매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25년 한 해에만 중국의 신에너지차 판매량은 약 1320만 대를 기록했다. 이는 현대 산업사에서 가장 빠른 기술 보급 사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신규 승용차 판매의 절반 이상이 전기차로 전환됐다는 사실은 단순한 시장 확대를 넘어 산업 패러다임이 이미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배터리 산업 역시 같은 흐름을 보인다. 글로벌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은 연간 2000억 달러(약 300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배터리 셀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배터리 공급망의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CATL과 BYD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 기업으로 성장했고, 우리나라의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차세대 배터리 기술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또 하나의 핵심 축이다.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7000억 달러(약 1050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 능력의 75% 이상이 아시아에 집중돼 있으며 AI 반도체, 첨단 패키징, 자동차용 반도체, 산업 자동화, 초대형 데이터센터 등 미래 성장 분야 대부분이 아시아를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인프라 투자 역시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인프라 투자는 연간 4조 달러(약 6000조원)를 넘어선다. 그 중심 역시 아시아다.

각국 정부는 스마트시티와 재생에너지, 산업단지, 물류 허브, 교통망 구축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며 첨단 제조업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각각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전기차는 배터리를 필요로 하고, 배터리는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 반도체는 첨단 제조장비와 AI 인프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전제로 한다. 신재생에너지는 에너지 저장장치와 연결되고, 스마트시티는 디지털 인프라를 기반으로 성장한다. 결국 각각의 산업은 서로를 성장시키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아시아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산업 슈퍼사이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변화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오랫동안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시각 역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제조국이지만, 동시에 세계 최대 규모의 혁신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로봇, 전기차, 반도체, 항공우주, 신재생에너지, 디지털 산업은 모두 중국 정부가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는 분야다. 중국의 경쟁력은 더 이상 '저렴한 인건비'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제 중국은 규모의 경제를 넘어 기술 우위와 혁신 속도로 경쟁하는 국가로 전환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약 14억 명의 인구와 국내총생산(GDP) 20조4천억 달러(약 3경600조원)를 보유한 세계 최대 산업경제 가운데 하나다. 반도체와 전자, 전기차와 배터리, 첨단 제조와 로봇, 태양광과 풍력, 인공지능과 디지털 서비스 등 미래 산업 대부분에서 세계 최상위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중국은 이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를 넘어 '혁신 선도국(Innovation Leader)'으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China Exit(탈중국)'이 주요 화두였다면, 최근 기업들이 선택하는 전략은 훨씬 현실적이다. 바로 'China Plus One'이다.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생산기지 다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중국의 제조 경쟁력과 숙련된 엔지니어 인력, 그리고 촘촘하게 구축된 공급망은 다른 국가가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렵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고부가가치 생산과 연구개발(R&D), 공급망 통합 기능은 중국에 유지하면서, 추가 생산능력은 베트남과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등으로 분산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미래 전략은 '중국 또는 동남아시아'가 아니라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인 셈이다.

중국은 첨단 제조와 연구개발, 혁신 생태계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동남아시아는 공급망 다변화와 비용 경쟁력, 빠르게 성장하는 내수시장이라는 강점을 제공한다. 두 지역은 경쟁 관계라기보다 서로를 보완하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아시아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요소가 있다. 바로 '대나무 네트워크(Bamboo Network)'로 불리는 화교(華僑) 경제권이다. 수 세기 동안 화교들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무역과 금융, 제조업을 연결하는 핵심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다. 현재 전 세계 화교 인구는 약 5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아시아 1000대 기업 가운데 500곳 이상을 소유하거나 경영하고 있으며, 누적 자산 규모는 2조5000억 달러(약 375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동남아시아 민간 자산의 80% 이상을 화교계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처럼 동남아시아 비즈니스는 단순한 시장 논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신뢰와 가족기업 중심의 네트워크, 장기간 축적된 인적 관계가 투자와 사업 확장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아시아를 이해하려면 숫자뿐 아니라 이러한 보이지 않는 경제 네트워크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화교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동남아시아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미국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의 약 3분의 1이 중국계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엔비디아(NVIDIA)의 창업자 젠슨 황(Jensen Huang)이다.

많은 사람들은 엔비디아를 미국의 대표적인 AI 기업으로 인식하지만, 젠슨 황의 성장 과정은 아시아계 인재와 미국의 혁신 생태계가 어떻게 결합해 세계적인 기술 기업을 탄생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AI 혁신은 미국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이를 현실화하는 반도체 생산과 첨단 제조 역량은 상당 부분 아시아 산업 생태계에 의존하고 있다.

결국 실리콘밸리의 소프트웨어 혁신과 아시아의 제조 경쟁력은 더 이상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두 생태계는 하나의 글로벌 가치사슬 안에서 함께 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글로벌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아시아를 단순한 판매 시장이나 저비용 생산기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과거의 성공 공식은 본사 중심의 의사결정과 생산 효율성, 비용 절감이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쟁력은 현지화(Localisation)와 혁신 생태계 참여 여부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아시아에서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는 기업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한다. 단기적인 실적보다 시장과 산업 생태계 안에서 신뢰를 축적하는 데 집중한다. 둘째, 연구개발(R&D)과 의사결정 권한을 현지로 이전한다. 아시아 시장은 국가별 산업 구조와 규제, 소비자 특성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본사 중심의 일률적인 전략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셋째, 정부와 산업계, 대학, 연구기관 등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 특히 첨단 제조와 반도체, 신재생에너지, AI 산업은 정부 정책과 산업 클러스터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제도와 정책을 이해하는 역량 자체가 경쟁력이 된다. 넷째, 현지 인재를 육성하고 지역 리더십을 강화한다. 문화적 이해와 현장 중심의 의사결정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조건이다.

이처럼 기업의 경쟁력은 더 이상 생산시설 규모나 인건비 수준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혁신과 현지화, 지속가능성, 전략적 파트너십, 그리고 지역 리더십이 새로운 경쟁 우위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위험요인도 적지 않다. 미·중 전략 경쟁은 공급망과 투자 의사결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각국은 자국 중심의 산업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며,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과 엔지니어를 확보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야말로 가장 큰 기회가 탄생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최근 필자가 사회를 맡았던 글로벌 대체투자 콘퍼런스(GAIC)에서 중국 베이징대 광화관리학원 학장인 류차오(Liu Qiao) 교수는 매우 의미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단순한 무역전쟁이 아니라 생산성과 제조 경쟁력에 대한 경쟁"이라며 "과거처럼 함께 성장하는 글로벌화 시대에서 이제는 국가별 생산성을 먼저 강화한 뒤 협력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단순히 미국과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은 누가 더 큰 시장을 보유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강력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느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와 배터리,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물류, 에너지, 첨단 제조가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는지가 미래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아시아는 더 이상 세계 산업 변화에 '참여'하는 지역이 아니다. 오히려 그 변화를 설계하고 주도하는 지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첨단 제조와 인공지능, 반도체, 전기차, 에너지 전환, 스마트 인프라가 동시에 성장하는 지역은 현재 세계 어디에도 없다. 아시아는 지금 세계 산업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는 중심에 서 있다.

이미 산업 슈퍼사이클은 시작됐다. 앞으로 글로벌 경제를 이끌 기업들은 단순히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이 아니라, 아시아의 산업 생태계 속에서 혁신하고 협력하며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결국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에서 생산하느냐'가 아니다. '어떤 생태계와 연결되어 있느냐'이다. 아시아는 더 이상 미래의 기회가 아니다. 이미 현재 진행형인 세계 경제의 중심이며, 앞으로 10년 글로벌 산업 경쟁의 승부가 결정될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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