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불확실한 세상

[광화문]불확실한 세상

정희경 경제부장
2006.10.19 10:18

북한의 핵실험이 한국 경제에 중대한 변수로 떠올랐다. 북핵 태풍은 한반도를 흔들 수 있는 위력을 지녔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불확실성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큰 위협이다. 막연한 불안감은 현실화한 물리적 피해보다 경제에 깊은 주름살을 남긴다.

하지만 세상이 급변하면서 불확실성은 종종 무시되는 경향을 보였다. 5년 전 미국을 극심한 불안에 빠뜨렸던 9·11테러사태도 지금 와서 보면 초기대응이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공동 회장도 회고록('불확실한 세계')을 통해 "나도 놀랐다"고 실토했었다. 미국의 금융 심장부를 겨눈 9·11테러사태 직후 "이제 다른 세계에 직면하게 됐다" "문명충돌이 현실화할 수 있다" 등의 경고들이 나돌며 중동발 지정학적 위험이 크게 부각됐다.

경제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유가 상승이나 보안비용 증가 등 테러와 직결된 영향은 차치하더라도 소비나 투자심리가 위축돼 이미 시작된 경기하강국면이 연장될 것이란 분석이 잇따랐다.

하지만 실물경제에 선행한다는 금융시장은 대체로 평온했다. 주식시장의 하락 폭은 1987년 10월의 '블랙먼데이' 때에 미치지 못했고, S&P500지수의 경우 불과 한달 만에 테러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백악관 참모 경험으로 국제정세에 밝았던 루빈 회장이 증시가 그리 신속히 회복될 줄 몰랐다고 술회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에게 또다른 충격은 경제 전문가들의 행태였다고 한다. 이들은 9·11테러사태 여파로 추가 테러 가능성이나 해외 지정학적 불안감이 고조됐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경제전망 보고서에는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루빈 회장은 그해 말 씨티그룹이 증시 전망을 위해 마련한 전문가 모임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주로 테러 위협의 파장이 논의됐으나 모임을 정리한 보고서에는 이 대목이 거의 담기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그런 유형의 위험은 계량화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같다." 루빈 회장은 이렇게 풀이하면서도 "월가의 유력 투자회사들은 새롭게 등장한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고 못마땅해 했다.

'확실한 것은 없다'를 삶의 준칙으로 삼는 그는 "투자회사들이 '내년 경제는 ○% 성장할 것'이라는 식의 전망을 내놓는 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혹평을 덧붙였다. 특정한 불확실성은 물론 불확실성 자체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어설픈 걱정보다는 무시가 때론 낫다. 최소한 금융시장 투자자들은 계량화하기 힘든 불확실성에 떠는 대신 실제 상황이 발생한 후 대처하겠다는 접근이 유리할 수 있다. 물론 위험을 최대한 헤지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북핵 위기는 대화와 갈등이 오가면서 4년째를 맞았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해 이번이 최악의 국면이라고 하지만 상황이 더 악화될지, 반대로 빠르게 안정될지 미지수다.

때문에 북핵 태풍에 아직은 크게 반응하지 않는 시장이 똑똑해 보인다. 그렇더라도 경제를 걱정하는 언론의 보도가 소음으로만 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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