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영어,경제교육과 부의 세습

[광화문]영어,경제교육과 부의 세습

홍찬선 기자
2006.12.14 09:57

사이비 능력(Pseudo ability)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제대로 된 실력이 없는데 특수상황에서 능력을 갖춘 것처럼 보일 때 쓰인다. 학교 다닐 때 공부가 별로였던 사람이 기업 오너의 자녀라는 이유로 임원이 됐을 때가 대표적인 예다. 임원은 임원에 상응하는 고급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똑똑한 평사원보다 훨씬 능력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사이비 능력은 학생 사이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성적은 수학능력이나 노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학원에 다니느냐에 더 영향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모가 부자여서 유능한 선생님이 많은 학원에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자녀의 성적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좋은 대학에 갈 실력이 안되는 학생이 미국으로 유학 가서 귀국했을 때 더 환영받는 경우도 있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야 국내 유명대학 졸업생이 더 많을지 몰라도 글로벌 경제에서 핵심 경쟁력 요소인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는 탓이다.

사이비 능력의 원천은 다양하지만 영어와 경제교육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영어는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지만 실제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학교가 아닌 학원에서 사교육으로 배운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다니고 해외연수를 갈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일수록 영어 구사능력은 뛰어나다. ‘부모를 잘못 만난 원죄’를 안고 사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영어를 구사하기 어려운 게 슬픈 현실이다.

경제교육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경제교육이 이뤄지지 못하다보니 여유 있는 집의 자녀들은 사립 경제교육 학원 등에서 경제를 배운다. 하지만 대다수는 경제교육이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한 채 약육강식의 정글에 내던져진다. 영어와 경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고, 경쟁에서 밀린 사람은 자녀들에게 영어와 경제교육을 시킬 여유가 없어져 그들의 자녀도 경쟁에서 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게 마련이다.

사이비 능력도 오랜 기간 쌓이면 진정한 능력으로 진화한다. 처음엔 사소한 차이가 큰 차이를 낳고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는 구조를 고착시킨다.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주어 사이비 능력으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이유다.

인도와 싱가포르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침으로써 전 국민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전반적인 IT기술은 한국이 인도보다 8대2 정도로 앞서고 있으나 영어는 반대로 2대 8 정도로 뒤져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는 실정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고 갈파했다. “삶은 태어남(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서 순간순간 내리는 선택(Choice)"이라는 것이다. 선택은 자유지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지적한 명언이다.

‘인생은 선택’이란 말은 가정과 회사 및 국가의 운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좋은 선택을 많이 하면 지속적 발전이 가능하지만 잘못된 선택이 되풀이되면 빈곤의 비참을 겪어야 한다. 영어와 경제교육을 특정 계층만 받도록 해서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영어를 공용화하고 누구나 경제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 계층간 장벽을 무너뜨려 모두의 경쟁력을 높일 것인지는 10년 후 한국 경제의 모습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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