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야기]고르바쵸프와 문배주의 추억

[술 이야기]고르바쵸프와 문배주의 추억

김지산 기자
2007.04.10 15:30

한때 우리에게도 명성과 수출 규모에서 세계적인 술이 생길 뻔한 시절이 있었다. 90년대 초반 러시아 미국 일본 등 주요 나라의 수반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대접했던 문배주 얘기다.

91년 한국을 방문했던 고르바쵸프 전 러시아 대통령은 문배주 맛에 반해 지금도 문배주 양조원의 이기춘 사장에게 술을 보내달라고 한다. 옐친 전 대통령과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도 문배주 예찬론자들이었다.

92년 옐친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각료 중 한 사람은 문배주를 선물로 못받아 서운한 감정을 표시하기도 했었다.

알코올 도수 40도 이상의 고도주인 보드카와 위스키 맛에 길들여진 서구 정상들조차 반해버린 문배주였지만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술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문배주 양조원이 워낙 소규모였던데다 세계를 상대로 한 마케팅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중주로 자리잡기에는 가격이 비쌌고 그만큼 생산량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규모를 키우지 못한 상황에서 해외로 뻗어나가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와는 조금 다른 경우를 보자. 이미 세계적인 명주로 자리잡은 러시아의 보드카. 한국에서 유명한 보드카 브랜드는 앱솔루트와 스미노프정도다. 이 브랜드들은 세계 시장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1,2위를 다투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 브랜드는 러시아의 것이 아니다. 앱솔루트는 스웨덴, 스미노프는 미국 브랜드다. 러시아의 자존심을 지키는 보드카 브랜드는 스톨리치나야정도에 불과하다. 러시아가 자국의 명주를 세계에 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시장을 리드하는 데는 실패한 사례다.

스코틀랜드가 스카치위스키를, 프랑스 샹파뉴 지역이 샴페인을, 꼬냑 지역이 꼬냑이라는 술 이름을 독점하고 브랜드를 특화시킨 것과 비교하면 러시아 보드카는 전략 부재로 실패했다.

한국은 1인당 독주 소비량 세계 4위인 주요 술 소비국이다. 입맛도 까다롭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이런 나라에서 세계인이 공감할만한 술 하나도 없다는 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진로가 증류주 판매량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절대량이 국내에서 소비되는 만큼 판매량은 숫자 이상의 의미가 없다.

이런 점에서 한국 술의 자존심인 진로가 중국에서 성공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백주에 길들여진 중국인들 입맛에 소주는 낯 간지러운 술임에 틀림 없다. 그래서 진로는 중국인 입맛에 맞는 소주를 개발하고 있다. 진로에 거는 기대에는 문화적 자존심이 녹아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