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관리<3>장내파생상품-②
합리적인 위험관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233년 역사의 영국 베어링은행이 단 1파운드에 네덜란드 ING그룹에 넘어간 희대의 사건은 금융기관들이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한때 ‘영국ㆍ프랑스ㆍ오스트리아ㆍ프로이센ㆍ러시아에 이은 유럽의 6번째 강국’으로 평가받던 베어링이었다.
사고의 발단은 단순했고 주인공 역시 닉 리슨이라는 젊은이 한명에 불과했다.
92년 7월17일 베어링금융그룹 싱가포르 현지법인 선물거래 책임자인 닉 리슨(89년 입사)은 거래가 다 끝난 다음 전표를 맞춰 보다가 부하직원의 실수로 2만파운드의 손실이 발생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급팽창하는 아시아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베어링이 발탁한 그는 이 사실이 본사에 보고될 경우 자신의 자리가 보존될 수 없다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후에 '88888' 계좌로 알려진 에러계좌에 손실을 은폐시켰다. 이 계좌는 휴면계좌였으며 때문인지 본사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악몽의 출발이었다. 크고 작은 손실이 날 때마다 리슨은 88888계좌를 사용했고 그의 실력을 너무 믿은 관리자와 본사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손실을 만회해야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던 그는 일본 오사카에 상장된 닛케이선물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여기서 손실을 반전시키기 위해 '오버'를 한다. 손실은 92년10월 360만파운드, 94년 말에는 1억6400만파운드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베어링 본사는 전혀 눈치 채지못하고 오히려 93년 베어링이 아시아에서 낸 순수익 3500만파운드의 3분의 1을 닉 리슨이 벌어들인 것만 주목했다.
95년들어 리슨은 닛케이선물 매수를 늘렸다. 그러나 신이 그를 버린 것인지 1월17일 고베 지진이 발생했고 닛케이지수는 지진 발생 당일 1만9350엔에서 베어링이 파산신청한 1월24일 1만7473엔으로 떨어졌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이 매매에서만 670억엔을 날렸다. 항복하기 한달 전부터 그가 사모은 포지션만 1만5000~2만계약으로 알려졌다. 2월13일 에러계좌가 드러났고 베어링은 2주후 파산했다.
그가 베어링에 끼친 총손실만 14억달러에 가까웠다. 28세 때의 일이었다. 리슨의 자서전 '악덕 거래인(Rogue Trader)'은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영화 '갬블'로 제작되기도 했다. 얼마전 그가 전업투자자로 나선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2003년 수익성 악화에 고전하던 모아증권에게 결정타를 날린 풋옵션 사고가 그것이다. 그해 8월 한 거액 계좌를 대신 운용하던 N씨. 그는 계획과 달리 손실이 발생, 운용에 차질을 빚자 비싼 등가격 옵션을 매도해 확보한 자금으로 외가격 풋옵션을 대량 매입했다. 주로 6000원 안팎의 초저가 풋옵션을 대량 매수해 주가가 급락하는 것을 이용해 대박을 내겠다는 극단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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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매매로 16억원의 미수채권이 발생하기 하루전 N씨는 44만계약의 미결제약정을 보유하고 있었다. 모아증권 외에 H증권에서도 적지않은 거래를 한 N씨가 짧은 기간 사들인 옵션 규모는 최대 200만계약을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무구조가 열악하던 모아증권은 결국 2004년 6월 영업폐지를 선택했다. 옵션사고만 없었더라면 증자를 통해 영업을 지속할 수 있었고 요즘과 같이 증권사 몸값이 치솟는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고의 발단은 사소한데서 비롯됐다. 운용부서(프런트오피스) 책임자였던 리슨이 위험관리에 대해 체계적인 인식을 가졌다면 최초 주문실수의 손실은 2만파운드로 끝났을 것이다. N씨의 터무니없는 풋옵션 매수에 모아증권 영업담당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더라면 파국은 면했을 것이다. 에러계좌 관리에 실패한 베어링의 경영진들, 브로커리지 수입에만 정신이 팔렸던 모아증권의 백오피스들이 합작해 회사가 파산하는 결과를 빚은 셈이다.
한 투자자문사 사장은 "운용이 갖는 태생적인 위험을 고려할 때 차라리 CEO가 운용을 모두 담당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삼성물산은 2005년 구리 선물거래로 한해전 순이익보다 많은 800억원의 손실을 냈다. 정확한 배경은 결국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증권업계는 구리 가격 상승을 고려할 때 구리선물을 매도하는 과정에서 손실을 입었을 것으로 파악했다. 체력이 강한 삼성계열사였기에 다행이었다. 중소기업에게는 치명타를 입힐 규모였다. 위험관리를 외면하면 지금도 예고없이 벼락을 맞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