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대 몸집 걸맞는 규제 필요

세계최대 몸집 걸맞는 규제 필요

유일한 기자
2007.05.08 10:51

[리스크 관리]장내파생상품<3>

지난해 국내 금융회사들의 파생상품 거래규모는 한해 전보다 15.3% 증가한 4경4291조원에 달했다. 상상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무형의 상품거래를 통해 오갔다.

지수옵션시장의 거래량은 수년간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지난해 증권선물거래소(KRX)에서 오간 파생상품 거래규모는 22억3500만계약으로, 2위인 유렉스(EUREX)보다 7억1000만계약이 더 많았다. 어느 시장에 내놓아도 부러울 것 없는 우리의 장내 파생상품시장이다.

◇세계 1위 배경에는 우수한 위험관리가 한몫=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금융회사들의 뛰어난 리스크관리 노하우가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수선물이 상장된지 11년째로 접어들면서 시장의 주요 파트너인 증권사, 운용사, 은행들이 각자의 운용능력과 재무구조에 걸맞는 헤지(위험관리)를 하자 시장의 안정성이 크게 강화됐다는 것.

이 덕에 하루 20조원의 거래가 이뤄지는 지수선물시장의 경우 큰 '탈'없이 질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60%를 넘던 개인의 비중은 40%대로 줄었으며 나머지를 외국인과 증권사가 차지하는 선진시장으로 변모했다.

국채선물은 일찌감치 외국인과 기관의 전유물로 자리잡았다. 국내기관의 위험관리는 외환위기, 2001년9·11테러 그리고 2004년 차이나쇼크 등 크고 작은 충격을 경험하며 축적됐다. 현대증권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예측가능한 리스크 기계적으로 계산=현대증권 노태일 리스트관리팀장은 "거래금액 뿐 아니라 손실한도, VAR(Value at Risk) 한도, 스트레스(Stress Test) 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위험 정도가 매일 아침 전산시스템에 명시된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시장상황에서 예상가능한 위험을 측정하는 VAR 시스템뿐 아니라 극한의 충격을 가정한 상황에서 예상되는 위험(스트레스 한도)까지를 고려해 각 팀별 포지션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리스크관리팀은 팀별 위험을 관리하고 각 팀장은 팀원들의 손실 한도 등을 점검한다. 선물옵션팀의 경우 한해전 성과를 기준으로 극외가격 옵션(Deep OTM)의 포지션한도를 15만계약으로 제한했다. 10일 기준 VAR한도는 160억원으로 배정했다. 이를 넘는 포지션은 실시간으로 체크된다.

이 결과 전구택 팀장이 지휘하는 선물옵션팀은 98년4월 이후 9·11테러와 2002년2월을 제외하고 월간 기준 손실을 입지 않는 탁월한 성과를 냈다. 현대증권은 위험을 고려한 성과배분시스템(RAPM)까지 도입해놓고 적용 시기를 저울질중이다. 현대증권은 최근 루보 사태에서도 위험을 한달전에 미리 예측하고 증거금율을 100%로 조정하기도 했다.

9·11테러 이전만해도 증권사의 쟁쟁한 옵션트레이더의 경우 최대 30만계약에 달하는 포지션을 누적할 수 있었다. 그러다 9월12일 하루만에 풋옵션(행사가격 62.5)이 0.01에서 5.04포인트로 503배 뛰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과학적인 위험관리의 중요성이 전면에 부각됐다.

◇중소형사는 여전히 취약= 얼마전 대형증권사 사장은 "중소형 증권사들은 대형사들이 마음만 먹으면 현재의 수익기반을 대거 잃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수 중소형사들은 지금도 운용을 잘하는 파생 딜러들을 팀 단위로 스카웃해 많게는 이익의 40%를 주는 계약을 하고 매매를 맡긴다. 이같은 자기매매가 중소형증권사 수익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게 현실. 그런데 대형사들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딜러들을 빼오면 중소형사들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딜러들의 운용에 수익이 좌우되는 정도가 강하다보니 이들에 대한 관리 감독이 느슨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올해 1월초 그리고 2월말 지수가 가파르게 하락하자 다수 중소형사들은 파생매매로 수십억원대의 손실을 입었다. 상품운용은 물론 위험관리를 담당하는 임원들이 교체되는 증권사도 있었다. 중소형사들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딜러들의 손실한도를 최근들어 부쩍 줄이고 있다. 인센티브는 실력에 맞게 주겠지만 가능한 위험 자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딜러들은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지나친 규제→대항마의 부재=금융기관들의 위험관리가 강화되면서 안정성은 대폭 강화됐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위험은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보신주의가 만연하다보니 시장의 위험을 적극 통제하고 즐기면서 이를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해외 금융기관과 펀드들에게 급격히 뒤쳐지게된 것이다. 시장의 가장 큰 존재이유인 수익창출 측면에서 막대한 공백이 발생한 셈이다. 이는 고스란히 헤지펀드 등 해외투자자들에게 넘어가고 있다.

최근 한 파생시장 전문가는 "우리나라의 지수, 금리 파생시장에서 활약하는 대형헤지펀드가 3개 정도인 것으로 안다"며 "사실상 우리의 장내시장이 이들의 포지션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다. 벌어들이는 돈도 상상할 수 없이 막대하다"고 전했다. 국내기관들이 위험관리라는 명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버튼 누르기'식(초단기매매)의 경쟁에 치중하다보니 큰 포지션을 쌓고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영역은 완전히 외국인들이 장악하는 엄청난 후유증이 발생한 상황이다. 세계 1위라는 화려한 밥상을 차려놨더니 이를 배불리 먹는 것은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의 도입에 맞춰 증권사들이 강조하는 분야는 PI와 IB다. 이들의 핵심은 한마디로 운용이다. 앞으로 금융기관의 핵심경쟁력은 운용이라는 말도 있다. 경재사보다 빠른 결정과 과감한 자금집행을 통해 운용에서 앞서 간다면 성장성은 크게 확대될 것이다. 미래에셋이 중국 등 해외시장에 발빠르게 진출하는 데는 운용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있다. 국내시장을 넘어 아시아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면 그 때의 기업가치는 지금과 또 다를 것이다.

보수적인 운용에 머물면서 소매영업에 치중하는 있는 증권사, 운용사, 은행의 미래를 밝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운용은 위험관리와 충돌한다'는 문제도 해결해야한다. 경쟁사를 이기고 글로벌 헤지펀드의 공격에 맞서는 내공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글로벌한 위험관리가 전제돼야한다. 그것은 분명 위험을 피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방향이다.

시장을 관리감독하는 당국의 태도도 달라져야한다. 지난해 나온 주식선물 상장은 아직도 감감하다. 증권업계 한 CEO는 "새로운 상품을 판매하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는데 있어 금감원을 비롯한 감독당국은 도움을 주려는게 아니라 위험관리, 투자자보호만 내세워 번번히 발목만 잡고 있다"며 "1200개 정도의 파생상품이 난무하는 21세기 첨단 자본시장에서 감독당국은 20세기의 낡은 사고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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